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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나무 -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 달리 초등학생 그림책 7
알폰소 루아노 그림, 끌로드 마르탱게 글, 이진경 옮김 / 달리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성장'을 말하는 동화책을 사랑한다. 청소년 성장 소설도 훌륭할 때가 많지만,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책에서 그 '성장'을 표현하고 설득시키는 건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할 것 같아서.
이 책의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뭐든지 다 알지요?"
할아버지는 뭐든 다 안다고 뻐기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겸손하게 대답하신다.
"얘야, 나는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느낌이 든단다."
손자는 말도 안 된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 정원의 체리나무 앞으로 인도한다.
체리나무의 열매는 아직 파래서 익지 않았다. 이 나무 역시 처음부터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는 아니었노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씨앗에 불과했던 것이 쑥쑥 자라 잎이 무성해지고, 하얀 꽃을 피우다가 마침내 검붉은 열매를 맺는 체리나무.
인생도 그 체리나무 같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것들은 체리나무 잎사귀라고 할 수 있지.
-그럼 꽃은요? 그건 뭐예요?
-내가 지금까지 써 온 이야기들이란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해 주는 이야기들 말인가요?
-그렇지. 그리고 내가 네 할머니에게 했던 다정한 말들도 다 꽃이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내 사랑"이라고 부를 때처럼요?
-너, 네 누나, 네 동생, 너희들 모두 "내 사랑"이지.
-체리 열매는요? 그건 뭐지요?
-그건 내가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야.
아직 만나지 못한 최고의 사랑, 최고의 노래, 최고의 책, 그런 의미뿐 아니라, '익기 전'에는 쓸모가 없는 '열매'로서도 인생을 비유할 수 있겠다. 긴 시간을 살아낸 노회한 할아버지조차도 겸손하게 인생을 바라보게 하는 미지의 것들. 그러나 언제가 익고 말 열매.
그림을 그린 이는 '글짓기 시간'으로 유명한 알폰소 루아노다. 정감이 가거나 예쁜, 선호하는 그림은 아니지만, 이 책의 진지한 분위기와는 잘 맞아 떨어진다. 책 속의 꼬마 아이가 꼭 체리 열매 때문에 체리 나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할아버지랑 기대어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체리나무가 좋다는 고백이 제일 마음에 든다. 함께 시간을 나누어 온, 정을 쌓아온,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찬사가 아니던가.
할아버지가 나누어 준 인생의 비유는, 소년이 자라면서, 성장해가면서 체득해 갈 인생의 진리와 지혜를 더 빛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