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래. 난 그게 싫어. 난 아무리 자신을 책망해도, 조금씩 죽어가도, 가만이 이를 악물고 보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 아냐. 이제 더 이상은 싫어"-280쪽
"너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건 히구치 메구미가 아니야. 바로 너 자신이지. 그애도 그것을 아니까 그렇게 쫓아다니는 것이고, 네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어떤 마음의 위안을 느끼는 거야." 신이치는 고개를 들어 노인을 보았다. "마음의 위안이요......?" "그럼. 나만 불행한 게 아니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고 그애는 생각하는 거지." 우리는 모두 희생자라고 히구치 메구미는 말했었다. "너는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고 했지.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야. 멋진 결단이야. 그렇지만 도망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야. 이제 그애에게 말을 해줘. 이제부터 나는 자책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야."-281쪽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신이치는 입술이 떨려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이치는 오랜 병마에서 깨어나는 하나의 징후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검은 덩어리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병의 원인은 제거했다. 신이치는 울었다. 길게, 많이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 놓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아리마 요시오는 신이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누군가의 팔에 안겨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주 억세고 따스한 팔이었다. 그것은 단지 부모나 어른의 팔이 아니었다. 고통스런 길을 함께 걸어갈 동지의 팔이었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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