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다 세트 - 전3권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99년도에, 내가 좋아하던 만화 잡지가 있었다. 'cake'라는 맛있는 이름의 잡지였는데 오래 버티진 못했다. 그 잡지를 보게 된 건 광고 때문이었는데 맛보기로 보여준 'feel so good'이 너무 재밌어 보여서 보게 되었던 것. 그리고 그 잡지에는 이 작품도 실려 있었다. '두 사람이다' 

흠칫 놀라게 만드는 이 제목. 조선 시대 때 어느 정승 가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노마님과 임신한 아씨를 위해서 어느 승려의 말대로 뒷산에서 이무기를 잡아 그 피를 마님께 마시게 한다. 이무기는 승천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잡혔고, 그 한을 남긴 탓에 집안에 저주를 내렸다. 그래서 대대로 이 집안에는 한 세대에 한 사람씩 희생자가 나오는데,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라는 저주. 그렇게 몇 백년이 흘러 지금(?)은 1999년.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 생인 지나.  

지나네 가족과 친구,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기본적으로 공포를 깔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 공포 영화처럼 뭐가 툭툭 튀어나온다거나 피가 튄다거나 골수가 쏟아지는,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언제 어떻게 죽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포인 것이다.  게다가 눈앞에 드러난 사람은 언제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한 사람은 숨겨진 사람. 그러니까 그런 사단이 벌어지는 것을 방조한, 혹은 조장한 사람이 되겠다. 그 사람들 모두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어떤 틈이 벌어지면 거기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한 사람은 사망자가,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저주의 굴레. 게다가 끊어지지 않고 되풀이 되는 더 큰 저주.

소재가 제법 그럴싸하다 보니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흥행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고 보면, 괜찮은 소재를 가진 만화가 영화로 옮겨진 예는 많다. 강풀 작가의 책이 대개 그랬고, 황미나 작가의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나 이현세 작가의 작품들은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갈아탔다. 허영만 작가의 작품도 김세영 작가의 작품 등등... 그렇게 매체를 바꿔서 재탄생 된 작품은 많지만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다. 매체에 대한 이해 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일단 덤비고 본 까닭이 클 것이다. 이 작품을 다시 보면서 역시 영화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이었을 텐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주인공 여자 아이는 그냥 평범해 보였다. 왜 남자애들이 이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아이가 강해 보인다는 말이 대사 속에서 등장하지만 잘 납득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작품의 후반부까지 가보니 그 아이가 갖고 있는 강인함을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강인함이 결국 운명도 팔자도, 저주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도. 

케이크 연재 당시, 단행본으로 치면 4권 초반까지는 봤던 것 같다. 그런데 결정적 범인이 등장하기 전에 폐간이 되었던 건지 작품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마무리 지어서 볼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하다. 게다가 작품의 뒤에는 세 편의 외전이 실려 있는데, 이 작품의 이해에 꼭 필요하진 않지만, 읽어두면 더 도움이 될 법한 사이드 이야기들이었다. 

가만 보면 강경옥 작가는 '잔혹' 이야기에 좀 흥미가 있는 듯하다. 버츄얼 그림 동화 때도 그랬고, 연재 중단된 '퍼플 하트'도 약간 그런 기미가 보였다. 그 수많은 독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레디온을 죽여버린(!) '별빛속에'도 지금 생각하니 작가의 그런 성향 탓이 아닌지 막 원망이 다시 솟구치려 한다.  

현재 팝툰에 연재 중인 '설희'도 일종의 '저주'와 '업', 그리고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빼도 박도 못하고 이쪽으로 몹시 흥미를 느끼시는 듯. 

공포 영화는 못 보지만, 강경옥 샘이 보여주는 공포 만화는 어째 감당할 수 있을 듯하다. 공포를 눌러버리는 호기심 덕분일까? 

이 작품을 할 때 당시엔 마감이 4개, 6개씩 겹치기도 했다고 한다. 와우, 선생님 정말 체력 끝내줄 때가 있으셨구나.. 당연하지만. 십 년 세월이 아니던가. 작품은 하나씩 보여주셔도 좋으니 연재 중단되지 않고 완결이 나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독자는 그거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잡지 환경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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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0-0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마노아님 베스트 특종 먹었어요. 축하축하~
나는 5천원짜리~ 그도 감사하지만!^^

마노아 2009-10-10 15:51   좋아요 0 | URL
헤헷, 감사해요~ 순오기님도 축하해요.^0^
우리 월요일에 보겠네요. 올해는 일년에 두 차례나 보다니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