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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오블라디 오블라다 -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 싱글들의 행복 주문
박진진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9월
평점 :
전작 오프 더 레코드를 재밌게 보았다. 이번 책도 '연애'에 관한 상담, 지침, 충고, 조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싱글들을 향한 응원가, 혹은 인생 상담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영화에도 초반 5분의 법칙이 있다. 초반에 일단 시선을 끌어주어야 남은 한 시간 40분의 진행을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시점보다 미래의 어느 극적인 순간을 먼저 보여주고 과거로 돌아가 처음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같은 입장에서, 책도 첫장을 넘겼을 때 관심을 사로잡아야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것이다. 여러 주제의 칼럼이 차곡차곡 쌓인 이 책도, 그래서 첫 에피소드가 참 마음에 든다.
'쿨? 개나 물어가시지' 라는 제목이 다소 도발적인 느낌을 주지만 읽어본다면 충분히 수긍하다 못해 '맞아 맞아'를 외치기 바쁠 것이다. 온 국민이 '쿨해야'만 하는 어떤 바이러스가 퍼진 것처럼 쿨을 외칠 때가 있었다. '굿바이 솔로'에서 노희경 작가가 배종옥을 통해서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사람의 피가 뜨거운데 어떻게 쿨할 수가 있느냐고. 이 책에서도 이야기한다. 전혀 쿨하지 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쿨을 강요받고 또 스스로 강요하면서 쿨한 척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 아파트와 사교육 열풍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감정적인 것조차도 유행을 타면서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눈총을 받는 광기 어린 대한민국이 안스럽다 못해 서럽다.
첫 시작은 나의 시선을 확 끌었지만, 이어지는 첫 챕터의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다른 글들은 조금 어리둥절하게 읽히긴 했다. 주 매뉴얼이 '연애'였던 까닭에 연애사에 밝지 못하고 남녀의 심리도 잘 모르며, 게다가 연애 성공 전략에는 도통 어두운 나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대단치 않은 스펙을 갖고도 100% 성공률의 연애사를 보여주었다는 그녀의 이야기와, 또 제법 괜찮은 미모지만 무려 '연애인' 꼬시기에도 성공하는 무적의 연애사를 가진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들은 완전히 안드로메다 이야기였다. 낯설기도 했지만, 그 연애의 성공을 위해서 그녀들이 투자한 어떤 시간과 노력들에 그닥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의 삶이고 연애니 내가 뭐라 할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 성공 전략들에 감탄하거나 따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연애를 못하는 거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물론 '나에게 물어본다'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연애 상담에 이력이 붙은 저자가 뜯어 말리던 상대와 결혼해서 오히려 잘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저런 사랑도 있고 이런 사랑도 있지... 하며 조금 안심이 드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런 예가 아주 드물지라도. 조금 계산적인 느낌의 사랑이 등장했고 순애보적인 사랑도 등장했으니 제로썸이다.
'달콤 쌉싸래한 동거'와 '낙태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여자에게 더 불리하게 적용되고, 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때가 많기에 공감이 되어서 더 불편했다. 함께 사랑했고, 그래서 내린 결정들에 대해서 한 사람에게만 강요되는 희생과 헌신 또 굴레들에 갑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성숙한 그대들은, 심사숙고하고 반드시 준비된 자세로 결정을 내리자.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니까.
두번째 챕터 '둘보다 하나가 행복한 이유'는 내가 저자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었던 칼럼들이 실려 있었다. 이미 읽은 것은 두 번 읽지 않는 경향의 나이지만, 오히려 더 반갑고 짠하게 읽혔더랬다. 특히나 저자의 나홀로 서기 독립 이야기들은 너무 리얼해서 때로 처절하기도 하고 대견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릴 나이에 독립을 감행해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림을 꾸려나갔다는 건, 의지와 각오 그리고 용기와 노력까지 필요한 일이 아닌가. 늘 독립을 선망하지만 당장엔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며 밤마다 분노를 곱씹는 나로서는 부럽고 부럽고 또 존경하는 마음까지 드는 부분들이다. 특히 '김'에 얽힌 이야기의 그 리얼함과, 원룸과 2개 이상의 방의 차이점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들이었다. 입버릇처럼 나올 수 있는 '입에 풀칠하기'가 아닌 정말 물리적으로 밥을 굶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머리 속에 환하게 그려졌다. 독립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라고 안겨주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싱글들이여, 가사 노동에서 탈출하자'는 또 어떤가. 돼지 우리가 되어가는 집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차라리 다른 비용을 줄여서 가사 도우미를 쓰자는 게 핵심 내용인데,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는 퉁박을 맞을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지당한 말씀이다. 특히나 저자처럼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라면 더욱. 돈이 많아서 넉넉한 살림으로 알아서 도우미를 쓰는 거라면 모르지만,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될 수 있겠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내 친구 하나는 정말이지 너무 게을러서 집에 있을 때는 양치질도 귀찮아서 못하는 녀석인데 독립해서 혼자 살 때는 집이 엄청 깨끗했었다. 치우기가 힘들어서 어지르지 못한다는 얘길 듣고 놀랬었는데, 필요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가 보다. 독립해서 살게 되면 모든 공과금과 매일의 반찬값에, 자잘한 생필품까지 모두 자기 주머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절약'과 '계획성 있는 지출'을 본능적으로 습득하지 못한다면 그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챕터인 '내 비록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잇백을 들지 못할지라도'에서 등장하는 '소비'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영화로 보았고, 어느 분이 예전에 올려준 사진을 보고서 마놀로 블라닉이 신발 브랜드라는 건 알겠는데 '잇백'이 뭔지는 검색을 해야 알아차릴 나같은 사람에게 백화점 쇼핑은 적당한 예시가 아니지만, 불필요한 것을 지금 싸다는 이유로 할부러 구입하는 만용은, 지금 당장 못 읽지만 언젠가 읽을 생각인데 지금 중고책으로 싸게 나왔으니 질러버리기를 거듭하는 나의 경우에도 부합된다. 최근에는 중고샵 이용을 자제하는 데에 조금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 본다. 이 카테고리의 마지막 이야기인 '적자 인생에서 흑자 인생으로 바꾸기'를 특히 추천한다.
마지막 챕터는 '싱글, 세상의 중심에서 불만을 외치다'인데, 싱글이면서, 여자인 우리들에게 던지는 화두들이다. 더불어 정치적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성토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이 단순히 싱글 여성들을 위한 인생 지침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있는 자에게만 친절한 사회'의 백화점 vip이야기나, 'Can you speak English?'에서의 미친 영어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래요, 나 담배 피워요'에서는 유독 여성 흡연가들에게만 따가운 시선을 던지는 이 나라의 풍토를 이야기했는데, 나같이 남자건 여자건 담배 피우는 걸 참 싫어하는 사람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저자의 불만은 여성 흡연가에게만 유독 강박증을 보이는 사람에게 향할 분노이기는 하지만.
책의 말미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젊은 청년들에게 보내는 안쓰러움의 응원가가 담겨 있다. 저자가 서른은 훌쩍 넘겼지만 20대 젊은이들에게 거침 없는 충고를 날리기에는 물리적 나이가 상당히 젊은 편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만 인생 여정과 역경, 경험의 무게를 생각할 때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말을 진하게 해주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다.
그런데 싱글들을 위한 책, 싱글들에게 적합한 충고는 꼭 싱글 작가만 쓸 수 있는 것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각설하고, 책이 몹시 이쁘다. 표지가 너무 잘 빠졌다. 깔끔하면서 강렬하게 다가온다. '오블라디 오블라다'가 무슨 말인지 몰랐던 나같은 독자들만 검색을 해주는 수고를 조금 더 하면 될 뿐이다.
저자는 천상 글쟁이로 살아야 할 팔자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쓸 수 있는 깜량이 우선 되어야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느낌 같은 것. 칼럼도 재밌게 읽히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드라마 영화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블로그에서 잠시 연재했던 소설도 꼭 활자화된 책으로 봤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정말 깔깔 웃으며 흥미롭게 읽었기에 뒷마무리가 무척 궁금하다.
앞서 '쿨한 척하는' 세태에 대한 성토가 있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저자의 글들은 참 쿨하게 읽힌다. 그런 글도 흥미롭고 재밌고 관심을 끌지만, 역시 '핫'한 글이 나를 더 끌어 당긴다. 가슴을 짠하게 저미는 그런 글들이 이 책 안에도 규칙적으로 담겨 있다. 이 책을 비롯한 작가의 창작물이 더 많이 읽혀서, 잘 쓸 수 있는 글보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응원해 보련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ps. 254쪽 맨 아래에, <큰 오빠네 방인데 나는 제사 때면 무조건 내 방처럼 편하게 쓴다. 말을 안 해 그렇지 내 낯짝만 보면 심란해 하는 가족들도 아마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해가 잘 안 된다. 무얼 고마워한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