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혼자다 2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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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화제가 열리는 칸을 배경으로 만 48시간 동안 일어났던 한 세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세계는 욕망이 자본과 함께 춤을 추는 공간이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슈퍼 클래스에 도달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는 사람들, 이미 슈퍼 클래스에 도달했지만 언제든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을 알고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  자신들을 향해 환호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찮게 보지만(물론 속으로!) 사실은 그들만큼도 자기 인생에 만족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2년 전에 이혼하고 떠난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한 세계를 파괴하려는 이고르. 그가 말하는 한 세계의 파괴란 한 인생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살아서 구축할 수 있는, 또는 다른 생명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땅에 선사할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을 앗아가는 것. 그것은 한 세계의 파괴란 표현을 써도 좋을 단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세계들을 파괴해 간다. 자신의 행위는 신의 계시라고 믿으며, 자수해서 죄의 대가를 치르려는 마음을 악마의 유혹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고르로부터 도망친 에바. 워커 홀릭 남편은 이미 충분히 많은 부를 거머쥐었음에도 멈출 줄을 몰랐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따뜻하고 소박한 시간의 중함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외롭고 불안했다. 더군다나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니 그녀의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에바에게 반한 한 남자가 있다. 베두인 족으로서 디자이너가 된 경건한 이 남자. 부족의 전통과 신앙을 사랑하고, 그에게 기회를 준 셰이커에게 생명을 맡긴 자. 그는 이제 영화 산업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그는 훌륭한 감독을 섭외했고, 새롭게 주목받을 신인 배우도 발탁했다. 

스물 다섯 살 나이의 모델 겸 연기자라면, 미모의 정점에서 이제 내려갈 때만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온갖 초조함을 밀어내며 인생 한방을 기다리는 가브리엘라. 그런 그녀에게 칸에서 떨어진 한 순간의 행운. 레드 카펫을 밟으며 디너 파티에 참석하고, 리무진을 향하는 선망의 눈길에 아찔해하는 그녀. 

그밖에, 영화 제작자로서 영화 산업의 큰 돈을 쥐고 흔들며 슈퍼 클래스로서의 오만함을 한껏 즐기는 사내가 있고, 인생을 송두리째 걸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자신하는 감독이 있다. 그렇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곳 '칸'과 어떤 형태로든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고 앞서 얘기했던 '슈퍼클래스'의 함정을 알면서도 거길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같은 모습을 보인다. 

사실 작품은 계속 같은 패턴의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합리화하며 그 욕망과 탐욕을 숨기거나 포장한다. 살인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은 시민의 안전과 고장의 명성이 아닌 자신의 간판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이 그 한 사람뿐이겠냐마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이런 사람들만 계속 배치해 두니 독자는 읽으면서도 환멸을 느낀다. 간혹 거기서 벗어난 '영적인' 느낌을 주는 등장인물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설명하는 키워드는 '자본'이다.  그것은 패션과 유행과 슈퍼클래스라는 말로 달리 표현되기도 한다.



드디어 그날이 온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모두가 알다시피 한 '시대'는 6개월이다)의 시작을 알리는 3주간이 온다. 그날은 런던에서 시작되어 밀라노를 거쳐 파리에서 끝난다. 전세계 기자들이 초대되고, 사진기자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가운데, 모든 것은 극히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행해진다. 신문과 잡지들은 새 컬렉션에 수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여자들은 황홀해하고, 남자들은 그들이 보기에 일시적 유행에 불과한 이 모든 것들을 약간은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자신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나 그들의 아내들이 슈퍼클래스의 위대한 상징이라고 믿는 그것을 위해 돈 몇 천 달러 정도는 준비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독점'이라고 표시된 것들이 세계 도처의 숍에 벌써 걸려 있다.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설이 현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274  


우주의 정화와 자연의 힘, 영적인 능력과 기적을 신봉하는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린다면, 그것들을 빗대기 위해서 가져온 설정처럼도 보이지만, 그 자신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향력 있는 인기 작가인 것을 생각할 때 어쩐지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구절들은 눈에 박힌다.



'어떻게 우리는 이처럼 교만할 수 있을까? 지구는 언제나 우리보다 강했고, 지금도 강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야. 우리가 지구를 파괴한다고? 우린 지구를 파괴할 수 없어. 우리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지구는 지표면에서 우리를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계속 존재해나갈 거야. 왜 '지구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그것은 '지구를 구하자'는 말은 힘과 행동력과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지구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하게 하자'는 말에는 절망과 무력함이 묻어나며,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271  

옳은 말이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고, 지구를 지배할 수 없다. 지금보다 더 지구를 파괴하려 들면, 퇴출되는 것은 태양계 속 지구가 아니라 지구 속 인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류가 다 함께 인지할 때까지도 슈퍼클래스를 향한 저 욕망의 나부낌은 멈출 것 같지 않다는 짐작에서 인류의 미래는 더 절망적이다. 

기존에 읽어왔던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뭐랄까... 기본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간절히 바란다면 온 우주가 다 함께 도울거란 메시지는, 그 근거의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 같은 게 되어 주었고, 유혹에 흔들리고 시험에 무릎 꿇는 인물들이 등장할지라도 기본 인식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게 아님에도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인간애에 대한 목마름, 선한 본성에의 갈망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서, 지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이런 세상이 진실일까 봐. 아니, 이미 진실이어서.

무책임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나쁜 짓을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범죄와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고,  충분히 오만하면서 가식적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연쇄 살인범에게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어디 죽어 마땅한 이유가 있어 죽겠냐마는, 그걸 이 화려한 조명과 명품과 파티에 조각조각 섞어서 보여주고 있으니 읽는 내내 현기증이 났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피냄새가 진동하고, 심리학에 관련된 책도 아닌데 비정상적인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가끔 제 정신 박힌 소리도 나온다. 바로 이렇게.
 


그는 이미 살인한 전력이 있다. 국가의 축복을 받으며 무기를 들고 사람을 죽였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고, 이름은 결코 묻지 않았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자기가 죽이는 사람이 한낱 '적'이 아니라 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이름은 그렇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그를 한 개인으로 안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 조상과 자손을 가진, 성공과 패배를 짊어진 유일하고도 특별한 개인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며, 생애를 통해 수천 번 되뇌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름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우는 최초의 말이다.
 
페이지 : 90  


저렇게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이름 대신, 사람들은 '슈퍼클래스'라는 계급을 선택한다. 그것을 위해 인생을 내던지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 존재를 저버리고,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 허무하고, 허무한 일이다. 

승자는 혼자다... 라고 작가는 말했다. 아니, 작품 속 주인공은 말했다. 과연, 누가 승자일까. 이 세계에서 참 승자가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바꿔 말해보자. 행복한 사람은, 있을까. 이 세계에서. 이 욕망과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당당히 행복할 자가, 정말로 있을까. 자신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어리석은 나방이 아니라 꽃을 향해 유유자적 비행하는 우아한 나비라고 착각하는 그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멀리 갈 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구축하고 있는 한 세계를 바라보면 알 것이다. 그 세계는, 정말 지켜낼 가치를 품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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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2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 늘어가는데 많은 협조를 하고 계십니다...코엘료의 신작이니 관심이 안갈 수가 없는데 이런 리뷰를 올리사다니요...^^

마노아 2009-08-20 20:12   좋아요 0 | URL
코엘료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긴 힘들었는데, 그래도 다들 관심은 갖는 것 같아요. 저도 과거에 비하면 애정이 좀 식었지만 여전히 관심을 줄 수밖에 없는 작가예요. 머큐리님, 한가해지시면 읽으셔요.^^;;

2009-08-20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0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