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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 상하이에 다녀온 뒤 집안의 개인사를 너무 시시콜콜 얘기하는 바람에 한참을 앓았더랬다. 내 글을 보았던 울 언니마저도 앓았다. 언니가 그랬다. 아직도 아프다고. 그런 얘길 꼭 해야겠냐고.
난 말이다. 내 아픈 얘기를 하고나면 좀 시원해지겠거니 했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도 다른 분들이 가끔 나 어릴 적에 이랬다고, 우리집 이랬다고, 우리 부모님 이랬다고... 참 아픈 얘기를 해주실 때가 있다. 그 얘기들을 들으며 함께 아파하면서 궁금했었다. 지금은 저런 얘길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하고. 절친한 친구랑 단 둘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공개된 블로그에서 가능할까 하고. 내 생각에, 그건 지금은 괜찮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찢어지게 가난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잘 살아...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만큼 아프지 않아. 지금은 이만큼 단단해졌어... 라고 말할 정도가 된 게 아닐까 하고.
난, 사실 단단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어릴 때부터 주우욱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하고 있으니까.
그건, 꺼내놓기 챙피한 말이지만 '가난'이다.
박민규는 부자에 대해, 인물 좋은 사람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시시하게 여기라고 했고, 그게 옳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그게 쉽지 않다고 나는 이미 속으로 결론 내리긴 했다.
그러니까 어제 점심 때 쯤, 외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외출하고 안 계셨는데, 엄마는 처음부터 찾지도 않고 자꾸 나한테 질문만 하는 거다. 문득, 며칠 전 삼촌이 엄마랑 통화하면서 내가 교사니까 나를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없겠냐고. 보증을 서줄 수 없겠냐고 했던 게 떠올랐다. 오늘의 용건은 나구나 생각하면서 안쓰러웠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데, 삼촌은 잘못 짚어도 너무 잘못 짚으신 거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삼촌의 질문에 대답하며 내 상황을 숫자로 설명했다.
삼촌, 4대 보험을 들려면 최소 한 달은 계약해야 해요. 그런데 올해 저는 계속 일주일 단위로 계약을 했어요. 4대 보험 없어요.
미래를 내다보며 시험을 봐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할 걱정하고 살아요. 믿기지 않죠? 실제로 그래요.
저는 누가 밀어주는 것까진 바라지 않고, 그냥 집에서 사고만 안 나도 감사할 거예요.
결국, 삼촌은 보증의 'ㅂ'자도 못 꺼내고 전화를 끊으셨다. 오죽 급하시면 평소 별로 친하지도 않던 조카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을까 싶어 딱하면서 갑갑했다.
리뷰를 서둘러 쓰고, 나는 곧 외출 준비를 했다. 강남에서 3년 만에 만나는 예쁜 동생들과의 약속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 직전, 엄마는 건물주인의 호출을 받는다. 우리 집은 2층인데, 아래층 상가까지 다 불러서 일제히 계약서를 다시 쓴 거다. 그래서 한달에 세가 11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올랐다. 이 어려운 시국에 참 독하디 독한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수주간 전기 때문에 고생하고, 여름이면 곰팡이가 창궐하는 이따구 집을! 하고 분노 게이지를 폭발시켜 보지만, 싫으면 나가라고 하니 별수 있나.
그렇게 갑갑한 심정으로 외출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이 반가웠다. 그 중 한 녀석은 레지던트 과정이고, 한 녀석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좌르륵 밟고 지금 박사 논문만 남겨놓은 상태다. (아, 보너스로 임용고시 전국 수석도 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녀석들은 참 팔방미인이다. 인물도, 집안도, 재주도, 노래도, 스포츠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그야말로 엄친딸들. 나는 반가운데, 동시에 좀 많이 부끄럽고, 무안도 하여서, 조만간 다시 보자는 말에는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서로 시간이 안 맞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스트레스를 풀겸 알라딘 마실을 다녔다. 몇 시간 동안 밀린 글을 주우욱 읽으면서.
그리고, 그 글을 본 것이다. 그게 설마 나한테 하는 얘긴줄도 모르고 호기심에 겨워하면서.
그 뒤 밤새 뒤척이다가 잠 못 이루고, 그지같은 영화보면서 또 심난해 하고, 책 좀 보려고 했지만 못 읽어서 집으로 귀가했던 오늘.
사실은 제일 큰 게 남아 있었다. 언젠가 내가 페이퍼로 잠시 쓰다 말았지만, 지난 5월에 집에 사고가 좀 있었다. 그 달에만 나는 500만원을 메꿨다.(설마 지금껏 내가 메꾼 게 이 정도 규모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돈이 있어서 메꾼 게 아니라 여기저기 손을 쓴 거다. 당여히 매달 결제가 돌아온다. 그리고 지난 달과 그 저번 달과 마찬가지로, 이번 달도 나는 혼자서 버텨내야 한다는 결론을 오늘 점심 먹으며 확인했다.
참, 막막했다. 어휴... 어휴... 이러면서. 그리고 내가 의혹을 느꼈던 그 글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집에 와서 확인한 거다.
그러니까 그건,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사건이다. 내가 그토록 부들부들 떨면서 온종일 울고 지낸 건, 사건이 주는 노여움보다도, 이런 총체적인 내 집안 사정의 구차함과 처연함과 궁색함 때문일 것이다.
가진 것도 없는 게 무슨 자존심이야!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것도 사치라고. 그런데 간혹 고집을 부리는 부분이 몇 개 있다. 그러니까 지난 주, 문제의 날림 아파트를 18년 만에 입주한 내 친구 집에 갔을 때. 우리 집과는 천지 차이가 나는 그 집을 방문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는 게 난 좀 신기했다. 그집이 날림 공사라고는 해도, 그래도 8억 정도 하는 집이라는데....
내 짐작에 그건 녀석의 방 때문이었을 거다. 공간이 없어서 책장을 못 짜기도 했지만 실제로 책이 별로 없었다. 친구는 문창과를 졸업했는데, 학부 때는 술 먹기 바빠서 책을 못 모았다고 했다. 나는 내 초라한 방을 떠올렸다. 창문 하나 없이 무더위를 선사해주는 쬐만한 방이지만, 나름 3면이 책장이고 책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허영이라는 걸 나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 소심한 것들로 쪼오금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내 마음이 덜 가난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게 아닌가.
난 녀석의 집을 그닥 부러워하지 않고 돌아온 내가 쫌 자랑스러웠다. 웃기긴 하지만.
아직 학생일 때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면서 제법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건 글의 힘이기 보다 팬픽의 속성상 해당 배우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가능한 결과였겠지만 제법 우쭐할 때가 있었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그때 야곱이 등장했다. 나의 야곱은, 참 좋은 나의 야곱은, 글을 너무 잘 쓴다. 사실 프로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나 넘.사.벽!
그때 당시 나는 살리에르의 심정을 늘 느꼈던 것 같다. 근데 뛰어넘을 수 없는 걸 어쩌라고. 글쓰기의 차원이 다른데.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난 연재 마무리 단계에서 연재를 중단했고, 그 후 4년 동안 다시 쓰지 못했다. 처음엔 바쁜 일 마치면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못 썼다. 나중엔 쓰고 싶은 마음은 유지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도 이미 까먹은 듯하다. 알라딘에 창작 블로그가 생기면서 많은 분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시는데 쓰고자 하는 아무 욕구도, 쓸 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예전에 썼던 소설의 양이 워낙 많아서, 마무리 못 지은 게 무척 아쉬운데, 언제 완결이 가능할지 사실 장담을 못하겠다.(곧 죽어도 완결은 하겠다고 꼭 말한다...;;;)
작년에, 출판사 쪽 일을 소개시켜 주면서 야곱은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최상급의 리뷰는 아니지만 기본은 해내는 성실한 리뷰어라고. 이때의 기본은 줄거리, 감상, 오탈자 지적 등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때 나는 좀 부끄러웠다. 더 잘 쓰지 못해서. 야곱은 '기본'은 한다는 말을 칭찬으로 한 것 같은데, 난 기본 밖에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지금은, 기본은 하는 게 어딘가 싶다. 강호의 고수들을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눈높이가 그리 된 것이다. 포부를 갖고 도전을 하고 비전을 갖고 열심히 글을 쓰는 마인드가, 내게 별로 없다. 물론 늘 핑계가 있다. 내 머리 속은 너무 복잡하단다. 내 마음은 터질 것 같단다. 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단다... 이러면서.
날카롭거나 예리하거나 창의력이 넘치거나 하진 못해도 성실하다고 해줘서 나는 또 자부심을 느꼈었다. 그래 내 유일한 무기는 성실성이야... 이러면서.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참 아프다는 거다. 쥐뿔 아무 것도 없는 내가 겨우 갖고 있는 한 줌인데, 그걸 해명하고 있어야 해서.
그 정도 자존심은 나도 있는 건데 말이다.
암튼, 그래서 나는 허영만이 지독한 가족애로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스토리를 쓰는 게 싫었다. 신경숙의 큰오빠가 장남의 짐을 다 지고 가면서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그래도 책임져 주니까 좀 부러웠던 거다. 그래서 서울대를 졸업한 피디가 빈민층처럼 묘사된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노희경이 좀 변했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보면서 나는 마음으로는 울어주지만 행동으로는 아무 것도 같이 하지 못하는 그냥 나밖에 모르는 그런 녀석이었다. 난 숨쉬기도 벅차.. 이러면서.
그러니, 브리핑에 뜨는 게시물들은 다 클릭해보지만, 댓글 한줄 달기도 미안하다. 댓글 한줄에 내가 미안함을 덜려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진심으로 저들을 위해 아파하는지 나도 의심스러워서.
말이 두서 없다. 밤이라 그렇고 원래 솜씨가 이렇다. 구구절절 궁색하고 옹색한 얘기들을 해놔서 민망하다. 싫어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또 어쩌면 지우게 될 것도 같다. 울 언니가 또 아파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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