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 / 삼천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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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나타난 여러 사회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가장 억압적인 사회 체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복종하도록 만들고 무엇이든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으로 억압받는 자들을 굴복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교육’을 통해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옳으며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15쪽

자본주의는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억압적인 사회이다. 이 말은 특정한 지배계급(즉 자본가)이 사회적인 지위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능력이나 특권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16쪽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계급이 한눈에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구분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계급 간의 경계도 유동적이어서 생활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중요한 경제 자원을 지배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크게 나뉘지만, 계급은 부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장 부유한 사람에서부터 가장 가난한 사람들까지 모두 개인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오직 몇 사람만 지배계급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만, 사람들은 늘 자신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19쪽

계급사회인 자본주의는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적 착취만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원래 갖고 있는 일하는 능력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마비시킨다. 나아가 스스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저항을 통해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결정권을 되찾고자 한다. 계급투쟁이란 바로 이러한 억압과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싸움이다. 계급투쟁은 대규모 저항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극적으로 일을 더디게 하는 행위도 계급투쟁의 모습이다. 또 계급투쟁은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든가, 단순한 월급쟁이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 또한 계급투쟁의 모습이다.

-23쪽

사적(私的) 소유라는 게 새로운 건 아니다. 먼 옛날부터 토지나 생산 도구 같은 몇몇 재산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가 있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이런 종류의 권리, 즉 사적 소유권이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수천 헥타르에 이르는 토지는 물론 호수까지도 개인이 소유하게 되었고, 심지어 항만이나 기업, 노래, 아이디어, 유전자 그리고 은행의 수십억 원이 넘는 돈까지도 사유재산이 되어 버렸다. 또한 아직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몇몇 개인들에게는 아무런 비용 없이 사유화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한 회사가 모든 사람이 마시는 ‘공기’를 오염 시킨다든가, 온갖 광고 선전물로 우리가 눈 뜨고 볼 수 있는 공간을 도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란 모든 것을 사유화하는 기계 같은 것이다.

-25쪽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우리가 사는 모든 공간이 거대한 시장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고, 이제 거의 모든 것이 판매 가능성 있는 상품이 되어 간다. 생선이나 그릇과 같은 물건뿐 아니라 건강과 교육, 정보, 안전까지도 상품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 소유한 것에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려면 뭐든 돈 주고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사람의 시간마저 상품화된 지 오래다.

-26쪽

자본주의란 일종의 관습이나 법, 정치 경제 제도의 총체로서, 몇몇 사람들이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을 보장하고 정당화하는 하나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독점한 자원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해 나갔다. 지배계급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자기 것으로 삼아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판다. 이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함에 따라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7쪽

자본주의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제도와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내고 보급시켰다. 그 첫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경과 국민(민족)국가다. 단일한 정치권력이 미치는 범위가 국경에 의해 확실히 구분된 지리적 공간과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다. 예전에는 이런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31쪽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통합된 내부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 국민국가를 창출해 냈다. 이런 틀은 사람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고 식민지 팽창의 기회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32쪽

자본주의는 또 공적인 공간이나 자연의 산물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사적인 공간이나 ‘가공 상품’으로 채우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누구든지 씨앗을 받아 길러 먹을 수 있던 천연 종자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농민들은 아까운 돈을 주고 종자를 사야만 씨를 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들과 산에 있던 농장이 아니라 건물을 지어 ‘달걀 공장’이나 ‘채소 공장’에서 나오는 식품을 먹게 되었다. 점점 사람들의 정신과 개인 생활도 축소되고 더 낮은 보수를 받고도 훨씬 강도 높은 일을 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오직 이윤 창출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노동조건이 나빠짐에 따라 개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우리는 유행과 경제적 지위라는 환상에 목을 맨 채 직업은 물론 소비나 생활 방식조차도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는 천진난만한 유아기 때부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지으려고까지 애쓰고 있다.

-37쪽

실제로 우리는 가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19세기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원한 것은 ‘민중의 정부’였다. 그런데 당시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라는 사상에 반발했고 자유주의는 줄곧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투쟁 끝에 엘리트들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치 자신들 것인 양 떠들지만, 그 참뜻을 통째로 왜곡시켰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중의 정부’를 뜻하는 말이 아닌, 단지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할 사람을 뽑는 선거제도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47쪽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는 늘 자기중심적이고 차별적인 가치관을 전파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교육, 문학, 광고나 대중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그러한 가치관을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가치관은 노골적 방식이라기보다는 늘상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로 전파된다. 이런 일은 자본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수단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본주의 문화는 우리 모두에게 내면화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녀의 장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소비 행위, 또는 일상에서 쓰는 언어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그런 문화를 계승하고 전달하는 셈이다.

-55쪽

사회주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사회주의 운동에는 다양한 사회 계급이 참여하고 있다. 모든 억압의 폐지를 주장한 사회주의는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학생, 예술가, 지식인, 농민, 여성주의자, 자영업자, 심지어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에게까지도 사회주의 사상은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최근에는 억압받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토착 원주민이나 생태주의자 등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71쪽

19세기 중반이 되면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도 몇 가지 조류가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그 가운데 아나키즘은 경제적인 착취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억압에 관심을 기울여, 특히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에 강력히 대항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나 그 밖의 사회주의자들을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72쪽

아나키즘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아주 주요한 수단으로 국가 권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국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중앙집권적인 정당을 조직해야만 한다. 필요한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계급이 소멸되고 생산 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억압이 사라지면 국가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불평등과 함께 국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74쪽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구상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사회주의를 이루려는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가 하나의 교리로 전락하는 순간, 다양한 정치적 전략이나 서로 다른 여러 상황과 역사적 변화에 맞게 적용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75쪽

레닌주의의 여러 형태는 역사적으로 대립이 있었지만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정권을 잡기 위해 중앙집권적인 전위 정당이나 군사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 또한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일당 체제, 계획경제 체제라는 미래 사회의 구상도 일치한다.

-86쪽

식민지로 지배받던 나라들이 민족자결을 내걸고 제국주의(독점자보주의)에 맞서 투쟁했는데, 흔히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해방투쟁은 서로 대립된다고 말해 온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냈다.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한 당의 역할, 경제 국유화, 평등주의 같은 요소는 민족해방 운동가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계급투쟁과 같은 과제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는 필요했지만, ‘민족 부르주아지’라 불리는 사회 계층의 지지를 얻어 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이루어 낸 급속한 산업화는 제3세계의 여러 운동 세력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본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권력의 집중과 경제 발전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중의 해방은 그 다음 문제로 미뤄진 채.

-87쪽

공산주의 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도 실행되었지만 대부분 평등이나 해방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를 띠었다. 1980년대 소비에트연방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지자 관료들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부르주아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소비에트 정부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는 해체되고 말았다. 좌절한 공산주의의 역사는 반자본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정치적 패배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큰 후퇴를 안겨 주었다.

-89쪽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과거 좌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을 장악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권력 잡아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도구로 국가를 이용한다는 전략이다. 오늘날 국민국가는 사회생활의 규범을 따르게 하는 권한 정도만 갖고 있다. 국가는 말하자면 정치권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런 권한이라면 강대국 정부, 거대 기업이나 금융 회사, 복합 미디어 그룹들이 오히려 국민국가보다 더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가의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단지 정치권력의 한 부분만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96쪽

"권력이란 ‘바깥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내면화되고 체질화된 것이다. 권력은 우리의 사회생활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내면에서’ 통제한다. 어쩌면 이것을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권력은 사회 생활은 물론이고 개인의 삶에까지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 낸다. 이런 권력은 단지 삶을 조절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재창조하려고 한다." -미셸 푸코

-97쪽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 일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변질시키는 법이어서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까지 무력화시켜 버리고 만다. 국가 기구를 장악하려고 하는 사회운동이 때때로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거나 강화시키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서 이기거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과거의 반자본주의자들은 당이나 해방군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단죄하고 종속시키는 기관이 되어 버렸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어김없이 과거 권력자보다 더 심하게 억압하거나 더 세련된 억압 형태를 만들어 냈다.

-99쪽

혁명을 언젠가 일어날 하나의 사건이나 기다려야 하는 그 무엇으로 봐서는 안 된다. 혁명은 날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권력에 저항하고 자율적인 틈새들을 새로 만들어 낼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자주 관리, 탈상품화, 그리고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 낼 때마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혁명이란 투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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