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선물 사계절 그림책
조 엘렌 보가르트 지음, 바바라 레이드 그림 / 사계절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바바라 레이드가 점토 그림을 그린 '노아의 방주를 탄 동물들'을 몹시 재밌게 읽었었다. 지난 어린이 날 파주 출판 단지 행사에서 사계절 부스 책을 많이 샀더랬다. 그때 바바라 레이드 책을 추천받았는데 이 작품이었다. 점토 그림은 이미 한 번 경험했던 터라 경이로움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조 엘렌 보가트의 글은 감동이었다. 대체 할머니의 선물은 무엇일까? 



세계 여행을 다니실 때마다 할머니는 어렸던 엄마에게 "뭘 선물해 줄까?"하고 물으셨단다.  

그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걸작이었으니,  

"푸른 하늘 한 조각과 아무 때나 불러 볼 수 있는 신기한 노래들을 갖고 싶어요." 

라고 하셨단다.  

아, 푸른 하늘을 건너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도 아니고, 아무 때나 빼서 쓸 수 있는 통장 잔고도 아니고, 하늘 한 조각과 노래 한 자락이라니, 어린 아이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 목록이 아니던가! 



아프리카로 가기 전 엄마가 할머니께 부탁한 선물은 바오밥 나무 씨앗과 정글의 왕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정글의 왕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가져오지 못했을지라도 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으르렁거리는 야생동물의 흉내는 기꺼이 내주셨을 것이다.  

아, 그런데 바오밥나무 씨앗을 심으면 과연 자라기는 할까? 아프리카처럼 덥지 않아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디져리두(호주 원주민의 민속 목관 악기)와 계곡의 속삭임을, 그리고 부메랑을 원하셨던 엄마. 



멕시코에서는 아침 안개에 입맞추는 뜨거운 햇살과 윙윙거리는 벌새의 날갯짓 소리를, 

하와이에서는 날치의 비밀스런 소원과 튜브처럼 두를 수 있는 무지개를 선물받고 싶다고 하셨다.  

북극에서는 북극곰의 털로 만든 길고 하얀 머리카락과 빙산조각을 찾으신 엄마. 



인도에서 원한 것은 카레라이스처럼 신기한 음식과 시타르의 딩댕거리는 소리,  

스위스에서는 커다란 치즈 덩어리와 눈 덮인 산, 그리고 예쁜 소리가 나는 종을 갖고 싶다고 하셨다.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에서 찍은 멋진 사진과 북경의 기념품을(모처럼 소박한 선물!) 

영국에서는 그늘진 오솔길에서 나는 싱그러운 빗방울 냄새와 커다란 나무에 매달아 타는 그네를 갖고 싶다고 하셨다.  

이렇게 예쁜 선물들을 원하는 딸도 멋지지만, 그 선물들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공수했을지 할머니의 재치도 궁금하다.  

각 나라에 해당되는 진흙 그림의 묘사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무척 크다.  

그 할머니와 해주셨던 것처럼, 그때의 아이가 자란 엄마는 지금 자신의 딸에게 똑같이 멋진 시간을 선사해주고 계실 거다. 저기 싱그럽게 웃고 있는 아이가 그 마음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친구나 지인이 해외에 나가게 되면 내가 꼭 부탁했던 것은 현지 사진이 담긴 엽서였다. 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엽서를 한국으로 부쳐달라고 했고, 힘들다면 갖고 오라고 했다. 간혹 거기서 붙인 엽서는 그들이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 내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독일에서 내게 엽서를 붙였던 야곱은, 체코의 오래된 헌책방에서 오랜 나뭇잎 냄새 나는 책에다가 내가 부탁했던 그곳의 낙엽을 한 줌 끼어서 가져왔다. 성경책인가 하고 여겼던 Rome이라고 써 있던 책의 1편은 내게, 2편은 야곱이 갖고 있다. 가끔 그 책을 꺼내 보면, 알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글자의 낯섬과 여전히 남아 있는 낙엽 냄새의 고즈넉함이 향수를 자극한다. 이제 누군가 또 외국으로 나가게 되면 엽서 대신 이 책 속의 엄마와 같은 주문을 할까 보다.  

캐나다에 가면, 빨강 머리 앤이 살던 초록 지붕 위 노래하는 새의 명랑함을 내게 선물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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