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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처녀의 사랑 ㅣ 옛이야기 그림책 7
강숙인 글, 김종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0월
평점 :
강숙인 작가님은 우리 역사와 고전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이 작품도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설화'를 바탕으로 창조되었다.
때는 신라 원성왕 때. 서라벌에 김현이라는 젊은 화랑이 살고 있었다.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무예 연습을 하던 김현.
그런 김현을 몰래 지켜보며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으니, 산기슭 오두막 집에서 어머니와 세 오라비와 함께 사는 처자였다.
가을 지나 겨울이 되어도, 처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며 김현을 그리워 했다.
홑꺼풀에 치켜 올라간 눈매가 토종 한국 사람을 표현했나 보다. 새초롬해 보이면서 수줍어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이 처녀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온 가족이 사실은 호랑이였던 것. 처녀 역시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였다.
처녀는 김현을 지켜본 이후 내내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식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펄쩍 뛴다. 여전히 사람들을 해치고 짐승을 잡아 먹는 오라비들.
호랑이 처녀는 봄이 오면 흥륜사에 탑돌이를 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처녀가 빌고 싶었던 것은 진짜 인간이 되어서 김현과 맺어지는 일이었겠지?
그러나 모든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 있었으니......
처녀는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가 김현과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리고 김현 역시 처녀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이킁!
자신을 화랑 김현이라고 소개하는 그를 두고 도망치듯 절을 빠져 나오는 호랑이 처녀.
인간이 아닌 자신이 더 이상 이 마음을 키워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눈물이 찰랑거리고, 굳게 다문 입술 끝에서 슬픔이 비어져 나온다. 아기자기 귀여운 그림인데도 슬픔이 똑똑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다시는 절을 찾아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음이 어디 그렇게 쉽게 접혀지던가.
다시 흥륜사에서 마주친 김현과 호랑이 처녀.
마침내 탑돌이 마지막 날에는 호랑이 처녀에게 프로포즈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만저만 난처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집까지 쫓아온 김현! 호랑이 오라비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서둘러 집 안에 숨겼지만 그게 통할 리가 없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벼락같은 호통 소리가 울리니, 못된 짓을 일삼는 호랑이들 중 한 놈을 죽여 벌주겠다는 엄포였다.
세 오라비 벌벌 떨 때 자청해서 벌을 받겠다는 호랑이 처녀.
그녀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사모하는 김현에게 벼슬길을 열어주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마을에 가서 사람들을 해치면 호랑이를 잡아 오는 자에게 벼슬길을 내린다는 나랏님의 명이 내릴 것이고 그때 김현이 나서라는 것이다.
배필의 목숨으로 벼슬길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하는 김현. 그러나 하늘님의 엄포 앞에 다른 길이 있을 리가 없다. 호랑이 처녀는 모두에게 복이 되는 길이라며 김현을 설득한다. 그리하여 이튿 날 도성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드는 호랑이 한 마리 출연하시니, 바로 호랑이 처녀 되시겠다.
약속한 대로 김현이 나타나서 호랑이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 노릇을 완수해낸다.
착하디 착한 호랑이 처녀, 자신이 해친 사람들을 치료할 법까지 세밀하게 알려준다.
다음 세상에선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눈을 감는 호랑이 처녀.
이번엔 김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 무릎을 베고 누운 호랑이는 인형처럼 가볍기만 하다.
고전 속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까닭에 강숙인 작가가 표현하는 여성성은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가 많다. 호동왕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 낙랑공주가 그랬듯, 이 작품 속에서는 호랑이 처녀가 기꺼이 목숨을 던져 사랑하는 이의 입신양명을 돕는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고지순한 마음의 깊이를 먼저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