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8 - 장 담그는 가을날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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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피소드 제목은 '말날'이다. 말날이라고 하길래, '말일'을 떠올렸건만 그 말이 아니라 12지신 중 午日로 음력 10월 중의 오일을 뜻한단다. 이 날이 된장의 오덕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며 다섯 형제가 모여서 장을 담갔다. 된장의 오덕은 단심, 항심, 불심, 선심, 화심. 형제들을 각각의 마음 하나 씩으로 칭하면서 이름을 부르는 게 재밌었다. 

이 형제들도 장을 정성들여 만들고 보존하는 일에 처음부터 목숨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가신 아내를 그리워하며 항아리를 정성들여 닦던 아버지의 마음이 일으킨 하나의 기적이었다. 큰 아들을 제외한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었고, 마지막 아들 화심은 양자였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성찬이었다. 운암정의 전 주인인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스승님의 장을 담은 항아리를 보관하기 위해 찾아온 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지금은 사 먹거나 얻어먹거나 하지만, 중학교 때 엄마가 고모가 보내주신 메주로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 고추장이 찐득찐득한 느낌의 하얀색 응고물이어서 무척 신기해했었다.(고춧가루를 뿌리기 전 모습이었다.) 엄마는 나중에 옥상까지 트고 살 수 있으면 그땐 다시 장을 담그고 싶다고 하신다. 십 수년이 지났는데도 장 담그는 게 기억이 난다는 게 더 신기! 

두번째 에피소드 '닭 한 마리'. 화실 식구 마성일 군의 실제 군입대 이야기를 극화시켰다. 실제로 어려서 헤어진 엄마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마성일군은 그늘 없이 해맑은 미소를 식구들에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강남에 가 있는 고속 버스 터미널이 예전엔 동대문에 있다는 걸 이 책 보고 알아버렸다. 그랬구나... 내일이 복날인데, 이거 보고 나니 '닭 한마리' 생각이 간절하구나. 거기 들어간 감자가 먹고프다. 

세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 년에 두 번만 개방하는 비구니 사찰에 공양 드리러 가는 한 보살님. 이곳을 찾기 시작한 지 4년이라는데, 그녀에게는 좀 더 남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무척 근엄한 표정의 스님이 눈썹과 눈빛 만으로 카리스마를 확 보여주시는데 나중엔 좀 미웠더랬다. 출가한 지 (아마도) 4년이니 아직 속세를 끊어내는 것이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절절한 모정을 그리 쳐낼 것 무어란 말인가. 그나저나 이번 편 보면서 스님들은 달걀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기뿐 아니라 달걀도 아니 되는구나... 미나리 강회는 손이 좀 가긴 하지만 안주로도 간식으로도, 반찬으로도 손색이 없게끔 맛나 보였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와인을 소재로 했는데 좀 통쾌했달까. 실제로 직장인들이 와인 접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와인을 즐기지 못하고 숭배하거나 잘난체하는데 쓰니 그런가 싶다. 프랑스인 장이 불고기와 와인의 만남을 통해서 한 수 가르쳐주는 장면은 재밌기도 하거니와 것봐라! 싶은 마음도 들게 했다. 하룻밤 접대에 천 만원이 넘게 나올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고가의 와인을 마신 것일까? 어휴... 

마지막 에피소드 아버지의 바다는 동명의 제목의 김연용 씨의 책을 그대로 입혀온 내용이다. 그 책을 볼 때도 참 절절했는데 식객의 그림으로 다시 보아도 애틋하기 그지 없다. 김연용 씨는 지금도 아버지가 어망을 치시던 그 바다에서 어부로 살고 계실까? 반짝반짝 빛나던 눈부신 사진들이 함께 떠오른다. 바다는 여전히 바닷가를 열심히 뛰어다닐까.  

식객은 '음식'이 주가 되는 이야기지만, 가끔 비중이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음식 자체에 몰두하기도 하고, 대결과 경쟁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이번 아버지의 바다처럼 어떤 '사연'과 '이야기'에 힘을 실으면서 슬그머니 음식 하나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가끔 성찬이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연이 되기도 하고 까메오가 되기도 하며, 아예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모두 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면 얼마나 식상할까. 이 모두 완급을 조절하는 허영만 작가의 빼어난 솜씨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편은 맞춤법이 안 맞거나 조사가 틀리거나 문맥이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다. 편집을 급히 하셨나??? 옥의 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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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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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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