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객 16 - 두부대결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작품에 들어서기 앞서 소개하는 사진들을 보면 허영만 작가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식객 자료를 취재하지만, 또 만만찮게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있다. 히말라야도 다녀오고 일본도, 캐나다도...또 어떤 나라가 있더라? 아무튼, 무척 다양한 나라들을 다녀오는 것을 보며 무척 부러움을 느꼈다. 단지 휴식의 차원이 아니라 다녀온 곳에서의 풍물과 인상은 작품 속에 녹아 다시 독자들을 찾아 온다. 멋진 피드백이다.
이번 이야기의 첫 번째 '오미자 화채'는 암벽 등반에 미쳐서 유리창 닦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한 남자의 추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산을 사랑했던 한 여성 산악인의 부음을 들은지 얼마 안 된 터라 어쩐지 더 마음이 쓰인다. 게다가 '집단 가출' 편에서는 로키 산맥도 나오니...
환희의 집을 방문하고서 그린 '송편' 편은 고정관념을 몇 가지 해소해 주기도 하였다. 시설에 계신 분들이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실 것 같은데 의외로 반가워하시고 재밌어 하신다는 것. 환자들이 치료에 대한, 열심히 살기 위한 동기부여를 갖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망둥어' 편에는 함민복 시인이 나오는데 이번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재밌고 인상 깊었다. 블로그에서 소개되는 것으로 많이 접했던 시 '긍정적인 밥'이 여기서도 빛났구나 싶어서 더 반가웠다.
실제 함민복 시인은 훈남형인데, 작품 속에서 시인은 턱이 툭 튀어나온 듯 그려서 좀 불만이었다. 실물을 뵙진 못했지만...^^
'표절'에 대한 소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일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도 작품 속에서와 같은 반응을 시인은 보이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노인 분들의 집단 가출을 다룬 캐나다 편 이야기는 무척 재밌었지만 좀 불편하긴 했다. 마누라 적금 통장 몰래 훔쳐서 한 달 간 여행을 가다니... 독자인 나도 이리 분한데 당사자는 어떨까 싶어서 말이다.
다만, 돌아가서 만날 아내도 없고, 전화할 가족도 없는 할아버지가 캐나다에서 좀 더 남아있겠다고 하는 부분은 꽤 찡했다. 역시 사람이 그리워서 낯선 사람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하려고 애쓰는 캐나다인 남자와 서로 잘 통할 듯하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심전심일 테니...
성찬이가 제대로 나와주는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두부의 모든 것' 편이다. 봉주와의 한 판 대결을 보여줬는데 두부 만두는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고될 줄 몰랐다. 그 긴 과정을 과연 스튜디오에서 재현 가능한가는 둘째 치더라도, 수심 117m에서 구한 심층수는 너무 오버였다. 오봉주가 이기긴 했지만 대표적인 서민 음식 두부를 저렇게 돈으로 쳐발랐는데 심사위원들은 감점은 안 주나 몰라....;;;;; 그러고 보니 누군가가 언급했던 '두부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버럭!)
성찬이가 대결 중에 초당동 제삿날이 모두 같은 날이란 소리를 헀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정치가 여운형선생이 야학을 해서 그 제자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동네가 바로 초당동이다.
여기에 이헌상선생 등 소위 빨갱이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 들락거렸던 동네지.
그래서 6.25 전쟁 후 이 동네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낙인이 찍혀 일부는 북으로 넘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총살을 당했어.
초당동에 살던 남자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거야.
그 후 생계가 막막해진 부인들이 두부를 만들어 강릉 시내까지 들고 나가 팔았다는 건데,
초당두부에는 이런 애환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만들어야지! (326-327p)
삼다도 제주도의 똑같은 날 제삿가 떠오르는 대목이라서 안타까움이 컸다.
오래 전에 동해 바다 가는 길에 들렀던 강릉에서 초당 순두부를 먹었더랬다. 비가 촉촉히 오는 날이었는데 휴가철이 지난 때여서 사람도 적었고 빗소리 좋았던 그 날의 두부 맛이 떠오른다. 깨끗하고 맑았더랬는데... 비가 오니 더 그 맛이 그립다. 나는야 두부 매니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