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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버린 아이들 - 세상과 만나는 작은 이야기
김지연 지음, 강전희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북한'이라는 단어가 '굶주림'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게다가 '어린이'라는 단어까지 맞닥뜨리면 어쩔 수 없이 한숨부터 나오게 된다. 당연히 이 책에도 굶주린 아이들의 비극적인 사정이, 생이별이, 되잡혀갈까 봐 떠는 공포가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지레 갑갑해하지는 말자. 작지만 소중한, 희미하지만 빛나는 소망과 희망이, 이 책엔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한 겨울에도 여름 옷을 입고 추위도 모른 채 두리번 거리는 아이. 발가락이 삐져나올 만큼 해진 신발, 낯선 남자가 나타나면 잔뜩 움츠러드는 어깨. 탈북 어린이의 모습이었다.
도저히 밥을 먹고 살 수 없는 굶주림이 이어지고 아버진 병까지 드셨다. 더 이상 굶는 아이를 지켜볼 수가 없어 '꽃제비'로 살아가라고 등 떠미는 아버지. 어느 아버지가 먹을 것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도는 꽃제비로 제 새끼를 밀어버리고 싶었을까. 오죽하면 그러랴 싶다. 어린 아이도 그 집에선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으니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을 밟았을 것이다.
그렇게 넘어간 중국 땅에는 저같은 아이들이 더 있었다. 그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먹을 것을 찾아 다시 헤맨다. 그리고 알게 된 '나눔의 집' 소식. 한국에서 온 어느 부부가 탈북 어린이들을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기막힌 소식.
해방과도 같은 그 얘기에 끌려 강물을 넘고 먼 길을 걸어 걸어 갔지만, 그 와중에도 추쇄꾼을 손을 피하기가 어려워 몇몇 친구들을 잃어야 했다. 내일은 나의 모습이 될 그 뒷모습을 새기며.
다행히 아이들은 나눔의 집에 안착하게 된다. 그 곳에서 따스한 밥을 먹고 따스한 물로 목욕을 하고 이미 와 있는 탈북 어린이들과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생일 케이크를 처음 먹어보던 아이들이 느꼈을 그 생경함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엄마와 함께 먹던 솜사탕 생각도 나고, 이 좋은 곳에서 함께 살지 못하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들 생각에 가슴도 먹먹했을 것이다.
당장은 따스하고 굶지 않으며 지내지만 당당한 자유를 안전하게 거머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눔의 집 부부는 아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루하루 먹고 살며 무사히 살아내는 것에 안도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답게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얼마 전에 6.25가 지났는데,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여느 때와 달리 방송도 비교적 조용했었고. 그렇게 조금씩 더 멀어져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젠 통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더 이상하게 여긴다. 세대 간의 생각 차이도 크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사람이야 당연히 통일을 소원하지만, 전혀 적을 두지 않은 사람들은 시큰둥하기 일쑤다.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어디서 들은 얘기라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노대통령이 재직 시절 북쪽에 돈을 많이 보냈는데, 그게 걸릴까 봐 자살하신 거라고. 근거는 둘째 치더라도, 그 얘기에 숨어있는 감정은, 북한을 많이 도와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혹은 나쁘다고 여기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들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그 독재자 밑에서 굶주리는 무수한 국민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갑갑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동포들이 사는 남한 땅으로 귀순한 북한 주민들이 이곳에서 오히려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비관을 하게 되며 자존감을 잃고 살아가게 되더라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비단 탈북 주민들 뿐아니라 이땅에서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 또 날마다 번식해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이제 밥을 굶지 않는 것만으로는 만족감을, 행복을 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밥을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비극적이던가.
하루를 연명한 밥 한끼를 제대로 먹일 수 없는 국가. 그걸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은 나라를 '버린' 아이들이다. 아이들조차도 그런 조국은 반갑지 않다. 버릴 수 있다. 버려야 자신이 살 수 있다면.
모노 톤의 그림은 거의 흑백으로 진행되며 가끔 노란 톤의 배경이 끼어 있다. 부러 자제한 컬러 그림이 아이들의 거칠대로 거칠어진 마음결을 반영한다. 표지의 아이들은 모두 뒷모습이다.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들은 제 그림자를 보고 있다. 이 어린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인데, 포기할 수 없는 그 길이 아득히 멀다. 멀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할 테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어둡게 그려내지 않아서 좋았다. 심각한 이야기지만 어린이들도 차분히 곱씹어가며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독후 활동을 겸하면 더 좋겠다. 다양한 형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