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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이브 Alive - 단편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MD님 추천 리스트에서 본 작품이다. 절판을 구하는 자...어쩌고 하는 멘트가 있었는데, 때마침 이게 중고샵에 있었다. 이럴 수가! 오밤중에 급하게 신간 하나 추가해서 이 책을 질렀다. 그러니까 1.000원짜리 품질 무보증 책을 한 권 건지려고 만원어치 더 샀달까. 으하핫, 그렇지만 절판된 진주를 구했으니 이 아니 기쁠 소냐.
원래 '지뢰진'을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형사가 주인공인데, 웬만한 살인마보다 더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다. 글씨가 많지 않고 그림이 압도적인 느낌을 주었었다. 그 작가의 책이라니 더 호감이 갈 수밖에.
표지가 좀 무섭다. 제목도 역으로 생각하면 으시시하고 소재도 평범하지 않다.
애인을 겁탈한 사내 셋을 죽이고, 다시 애인까지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은 야시로 텐슈. 오전 11시까지 간수가 부르러 오지 않으면 그날은 살 수 있는 날이라 안심한다는 사형수 그에게, 간수의 호출이 도착했다. 지은 죄의 중함을 알기에 죽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야시로지만, 그래도 죽는 것은 무서웠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떤 '실험'에 응해준다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것.
인권 포기 각서까지 써야 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딘들 죽어야 하는 이곳만 못할까. 이곳보다 더한 지옥이 열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조건으로 사형수에서 석방된 또 다른 사내가 더 있었다. 그들 둘이 도착한 곳은 모든 게 다 제공되지만 나갈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시간조차 알려주지 않는 커다란 방.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고 잠도 잘 수 있지만, 거기까지인 그곳. 점차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창문 너머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니, 스스로를 '마녀'로 소개한 그녀. 자신과 놀고 싶으면 상대를 죽이고 제 방으로 건너오라고 유혹한다. 미칠 대로 미쳐가는 두 사람에게 던져진 충동적인 미끼다.
야시로 말고 다른 한 사내는 즉각 반응을 했지만, 야시로는 좀 더 침착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내야말로 미끼였다. 야시로를 자극시키기 위한.
자신을 마녀라고 소개한 그 여자는 현재 어떤 존재에 빙의되어서 영혼이 잠식되어가는 중이다. 자신보다 더한 살의를 가진 강한 존재를 만나기 전까진 그 몸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몸을 잠식해간 어떤 존재는 거대한 살인마로서 잘 이용하면 어마어마한 군사적 무기가 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걸 끌어내는 게 정부의 목적이었던 것.
그들의 실험은 성공해서 야시로에게로 힘이 넘어가지만, 그걸 통제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여자였던 그녀와 달리 사형수의 기억과 잠재된 살의가 있었던 그에게는 말이다.
그에게서 다시 그 힘을 빼오려면 더 큰 살의가, 더 큰 증오가, 더 큰 힘이 필요했다. 과연 누가 그 힘을 가져올 수 있을까?
영화 다크 엔젤이 떠오른다.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인데, 처형된 사형수의 살해 수법과 똑같은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형수의 몸에서 빠져나간 악령이 다른 숙주에게로 이동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 최종 숙주가 되었던 덴젤 워싱턴은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막판에 어느 벌레에게로 악령이 이동하는 바람에 결국 그는 죽지만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는 엔딩이었다.
이 작품도 그런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끝난다면 이 작품이 단편이 아니라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다.
짧은 페이지 안에 인간의 양면성과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적자생존 환경에서의 먹이사슬의 이동까지 그려내느라 포화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걸 이 안에 쏟아낸 역량도 무시 못할 것이다.
그림을 어찌나 잘 그렸는지 사형수의 심리 상태, 불안한 감금 상태, 그리고 애인의 죽음에 있어서 그가 가졌던 죄의식 등을 실감나고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그나저나 이 작가님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지뢰진 말고는 잘 모르겠다. 작가님 탓이 아니란 내가 무심한 게 맞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