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김주영 작가님은 대하소설로 유명하신지라, 이 작품도 두툼한 두께를 자랑할 줄 알았다. 이렇게 가벼운 책장으로, 또  예쁜 그림으로 만날 줄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더 반갑기만 하다.  

시인에게 소설을 쓰라고 하는 것보다, 소설가에게 시를 쓰라고 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풀어 쓰기보다 압축해서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워 보였다. 이 작품은 생각하는 동화, 성장동화, 어른을 위한 동화... 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제목에서 걸죽한 '똥'이 등장했지만 이야기는 파릇파릇 이쁘고 싱싱하다. 뿐인가, 그림에서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다. 동 작가의 다른 그림책을 꼭 찾아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화물열차가 지나가면서 긴 기적 소리를 울렸다. 고요하기 그지 없던 양지 마을을 한바탕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릴 만큼 커다란 소리. 화물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열차의 젊은 기관사는 양지 마을 이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마을을 지나치면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부러 기적 소리로 아침을 깨웠던 것이다. 그 나름대로는 지극한 효성의 표현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기적 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뜻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농부 박씨가 몰던 임산 8개월 째인 암소가, 기적 소리에 놀라 그만 논두렁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소를 달래거나 혼내켜야 했던 박씨는 논두렁 옆 봇도랑에 20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란 백양나무의 한 가지를 꺾어내버렸다. 그리고 그 꺾여진 나뭇가지의 입장에서 이 책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뭇가지가 겪은 아픔과 상처, 사람들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 이야기, 사람들 사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 담아 들여다 보던 일 등등등... 

백양 나무 가지가 마음 둔 소녀는 바로 박씨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아버지 점심 드시라고 찬 심부름 하러 나온 아이. 

단촐하게 입은 한복 치마가 야무지고 귀여운 뒷태를 감싸고 있다.  

아버지가 뭐라 하시면 바로 눈물부터 글썽이는 울보 재희. 

시험 성적이 엉망이 되어서 엄마한테 종아리 맞고 또 엉엉 울었던 재희.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나뭇가지는 얼마나 생동감 있게 묘사하던지 내가 구연 동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 게 바로 작가의 필력이었을 것이다.  

엄하게 목소리를 키워보지만 내심 남편이 말려주길 바랬던 엄마, 딸 아이의 종아리를 치고는 부풀어오른 상처에 오히려 자신이 더 크게 울어버리는 엄마, 학교는 하루 쉬게 하면서도 종아리 때린 일은 비밀에 부치려고 노력한 부부의 마음까지, 소소한 이야기가 참으로 극적으로 전개되어 갔다.   



그렇게 백양나무 가지는 소를 때리려던 회초리에서 재희네 집 싸리문에 끼워둔 가지가 되었고, 다시 재희의 종아리를 치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뒷간의 똥친 막대기로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고 갈수록 더 망칙한 신세가 되어버린 막대기 하나.  

그런데 재희는 사실 울보 떼쟁이 소녀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놀리고 못살게 구는 동네 사내 녀석들을 똥친 막대기로 겁주거 쫓아내기도 하는 야무진 아이였다. 그 바람에 화장실을 떠나게 된 나뭇 가지. 그 후 논두렁에서 물을 공급받고 겨우겨우 목숨 이어가던 이 막대기에게 마을에 불어닥친 홍수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순간에 이르면서도 제 목숨을 포기하지 않던 끈질긴 백양나무 가지.  

그 바람에 다시금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흐름을 보다 보면 어떤 결말에 이를지, 어떤 메시지를 주게 될지 독자는 이미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어찌 보면 뻔하지만 고전적인 오랜 진리, 오랜 교훈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교훈이라는 것은 결국 삶의 진실이고 진리이기도 한 메시지가 아니던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때 벌써 죽었을 지도 모를 가지 하나가, 똥친 막대기로 전락해 좌절하고 말았을 그 나뭇가지가, 이제 제 어미처럼 굵고 커다란 나무로 성장해 갈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필시 제 어미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늠름한 나무로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그것이 기본일 것이다. 온갖 좌절과 고난이 닥칠 때마다 무릎 꿇어버리면 다음이라는 것이, 미래라는 것이 어찌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이더라도 눈부신 날개를 자랑할 백조의 꿈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 백조가 물 밑에서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 만큼 바쁘게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까먹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밥 먹을 때 똥 얘기 하지 말라니까!!!
    from 그대가, 그대를 2013-05-14 23:15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말린 자두를 먹는다. 변비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 먹고도 말린 자두를 두알 먹는다. 역시 변비에 좋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똥! 우리 몸에서 뗄 수도 없는 중요한 똥! 그러나 '똥덩어리!' 소리가 욕으로 들릴 만큼 무시 당하는 가엾은 똥! '바른 우리 말 읽기책'으로 기획돈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이야기의 첫 시작은 '똥' 이 담당했다. 어린 동생 동만이의 별명은 '똥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