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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ㅣ 생각하는 숲 8
사노 요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00만 번 산 고양이, 하늘을 나는 사자, 아저씨 우산... 모두 사노 요코의 작품들이다. 모두들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들인데, 사실 어른이 보아도 마찬가지다. 난 이 녀석들을 선물용으로 쟁여두고 있다.(당근 내것은 따로!) 이 책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는 '생각하는 숲'의 8번째 책이라고 나온다. 역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까지도 즐겁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내용도 내요이지만, 시침 뚝! 떼는 그 천진난만 표정들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얼굴들이다. 자, 구경해 보자.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옆의 조그만 집에 사는 한 아저씨.
봄이 되어 커다란 나무에 꽃이 가득 피어 지나가던 우체부가 감탄하고 있을 때, 아저씨는 성가신 나무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침에 작은 새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에 깬 아저씨는 시끄럽다고 나무를 걷어차기 일쑤였고, 나무 아래서 차 마시는 것을 즐기던 찰나 찻잔에 새똥이 떨어지면 '두고보자!'고 이를 갈던 아저씨였다.
볕이 좋은 날 나무에 줄을 걸어 빨래를 널었는데, 나무의 커다란 그림자 때문에 빨래가 바짝 마르지 읺았다. 아저씨는 또 나무를 향해 '두고 보자'고 외쳤다.
뿐인가? 나무에 그물침대를 걸어 낮잠을 즐길 때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애벌레에 화들짝 놀라 깨자마자 나무를 구박하기 바빴다.
가을이 되어 빨갛고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자 동네 꼬맹이들이 서리하러 나타났다. 역정을 내며 자신이 열매를 따가는 아저씨!
날씨가 쌀쌀해지자 마른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걸 긁어 모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도 두고보자고 외치는 아저씨. 나무를 향한 아저씨의 이유있는 미움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겨울, 기껏 눈을 쓸어놓았는데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진 눈두덩이에 성질을 못 이기고 나무를 베어버린 아저씨.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저씨는 봄이 온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커다란 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새들이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이 온 것을 몰랐고, 차를 마시기 위해 기댈 수 있는 나무 그늘이 없었다.
빨래를 말리려고 해도, 그물 침대에서 잠들려고 해도 줄을 매둘 나무 기둥이 없었다.
가을이 와도 빨간 열매를 얻을 수 없었고, 고구마를 구울 마른 잎조차 없었다. 우체부는 표식이 되어주던 나무가 사라져서 눈 쌓인 똑같은 집들 사이에서 헤매야 했다.
아저씨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외로움이, 서러움이, 후회가 밀려왔다.
늘 눈을 치켜뜨던 아저씨가, 어느 순간 아쉬운 얼굴을 하더니, 이젠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것이다. 그 어깨가 유난히 외롭다고 느꼈다.
외로운 아저씨의 마음을, 나무는 알아차린 것일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새싹이 돋아난 나무에 물을 주는 아저씨의 두 뺨이 붉게 물들어 있다. 지난 날 역정내느라 붉어졌던 얼굴이 아니라, 기대와 흥분, 그리고 설렘이 담긴 그런 표정이다. 나무는 이전만큼 자랄 때까지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저씨도, 독자도 알고 있다. 그 기다림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저씨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오래오래 그 나무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그 만남에 기뻐하며 오랜 사귐을 가졌으면 한다. 도시적인 삶과는 너무도 먼 이야기지만, 마음 속 나무 친구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