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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훔치는 도둑
프랑수아 크로자 그림, 제라르 몽콩블 글, 김진경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사전 정보 없이 구입한 책이다. 뒤쪽으로 높다란 성이 보이고, 큰 나무를 휘감은 용과 나무 꼭대기 위에 둥둥 떠 있는 배가 그려진 표지 그림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내용은 무척 심심하다. 음,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자연을 꼭 끌어안은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는 한 소년. 파랑새가 멀리 다른 곳으로 갈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그저 두 눈을 꼭 감기만 하면 된다고. 꿈나라 여행을 일러주려나 보다. 그림은 정성스레 그린 듯하지만, 시간대를 알 수가 없다. 더 찬란해서 해 쨍쨍 내리 쬐는 오후의 나른한 시간인지, 해질녘의 석양 무렵인지, 이슬 촉촉한 새벽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열심히 그리긴 했는데, 매력이 없고 심심한 그런 느낌이다.
정원도, 집도 사라진 숲길에, 전혀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 소년이 걷고 있다. 발 밑에 누워있는 이까의 보드라운 감촉을 소년은 느낄 수 있을까.
축축한 이끼가 아닌 보드라운 이끼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이끼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 속에 빛이 부옇게 들어오고 있다. 빛이 들어오는 설정은 좋은데, 책이 낡아서인지 광택이 없어서 너무 바랜 느낌으로 다가온다. 새책이라면 좀 다르게 보였을까?
낡고 부서지기까지 한, 황폐한 성 안에 들어가본다. 천장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이 성에서 소년의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두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 있는 기둥 위에는 용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혹은 찌르고 있는 기사/용사의 모습이 보인다.
한쪽 벽에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벽화. 벽화 속 사람들이 소년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는 순간, 소년은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또 다시 만나게 되는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지만, 이미 많이 실망하고 들어간 나로서는 그닥 흥미를, 흥을 못 느끼겠다. 뭐랄까, 파티를 즐기고 있는 '척'하는 느낌이다. 이 속에선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소년의 웃음도 어쩐지 어색하다.
광대복장을 한 다른 출연진들처럼, 그저 한바탕 속고 속이는 그런 '쇼'가 펼쳐지는 느낌의 그림이다.
소년은 탑 꼭대기 위로 올라가 보았다. 넓디 넓은 세상이 보인다.
검은 새는 이제 일러준다. 명령을 해 보라고.
탑들에게, 저 새들에게, 돌로 만든 용들에게. 이곳의 주인은 바로 소년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림자도 빛도 네 앞에선 고개를 못 든다고 일러준다. 표현은 멋있다. 포스가 없지만.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어 소년이 서 있던 탑은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된다.
무서운 괴물이 가득 타버린 배가 다가오고 있다. 이 괴물들은 꿈을 사냥하는 녀석들이다.
꿈을 잡아먹고, 꿈을 깨뜨리고, 꿈을 빼앗아가는 것. 바로 빛을 훔치는 도둑들이다.
괴물들이 성에 들어가서 친구들을 잡아 먹기 전에 용사를 깨워야 한다. 이 괴물들을 모두 해치워줄 존재. 바로......
이 세상 모든 꿈들의 엄마, 꿈의 여왕, 꿈 지킴이라고 해도 되겠다. 용감무쌍 용 처녀(?)가 꿈 도둑들을 혼내주었지만, 그 역시도 천하무적은 아니다. 꿈의 주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꿈이 깨어지는 순간, 꿈의 세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소년은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런데, 돌아온 현실 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떠나기 전 모습과 똑같은가? 변화가 있다면, 어떤 일이 생겼던 것일까? 그걸 상상해 내는 게 독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쁜 선택인 듯하다.
이 책이 내게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이렇게 상상의 세계 혹은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책에서 이미 많이 접했고, 그 퀄리티가 너무 높았던 까닭에 기대치가 한껏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심심한 편이었던 허리케인도, 이 작품에 비하면 월등히 재밌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비교수치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꿈과 모험이 가득한 환상 동화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느낌과 판단은 각자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