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아기토끼 철학 그림책 3
라스칼 글, 홍성혜 옮김, 클로드 듀보아 그림 / 마루벌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철학 그림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동했다. 처음에 읽고 나서, 엣? 했다. 난해하다고 느꼈다.  

조금 고민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아리송송했다. 느낀 만큼만 적어보자. 




옛날옛날에 '빨간 토끼'라 불리는 아기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빨간 토끼'가 처음부터 빨갛게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얗게 태어났지만, 빨간 페인트 통에 빠진 뒤 빨간 토끼가 되어버렸던 것. 

엄마 토끼와 아빠 토끼가 열심히 비누질 하고 물로 씻어 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부터 빨간 토끼는 매일 아침 해야 하는 세수와 우유비누 냄새와 토요일 저녁에 해야 하는 목욕을 몹시 싫어하게 되었다. 

토끼는 원래 물을 싫어하는데, 토끼가 물을 싫어하게 된 이유로 설명해도 통할 듯 싶다. 

어느 날 빨간 토끼는 감기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옥수수빵과 연한 홍당무 한 다발, 기침 약을 갖다 드리기로 했다. 엄마 토끼는 고약한 사냥꾼들을 조심하고 길거리에서 한 눈 팔지 말고, 어두워지기 전에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빨간 토끼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지만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심부름의 성격과 반응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이 소녀! 



온통 빨간 옷을 입은 이 여자아이는 바로 빨간 두건이라고도 하는 '빨간 모자' 소녀다.  

빨간 토끼 역시 빨간 모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 왜냐하면 책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빨간 모자 역시 빨간 토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역시나 책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둘 모두 서로의 결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 결말은 슬픈 것이었다.  

결국 둘은, 책에 쓰여진 것대로 진행시키지 않기로 의기 투합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새 역사를 쓰기로 결심한 것! 



그들이 사는 이 숲에 늑대 따위는 아예 없다고 바꾸거나, 이 숲에선 사냥을 못하게 바꾸는 게 이들의 아이디어였다.  

또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져서 바구니를 들고 찾아갈 필요도 없게 만든다. 원천봉쇄! 똑똑한 친구들이다.  

토끼는 우유나 건포도처럼 먹는 음식이 아니니까 잡아 먹을 수 없다고 바꾸기도 하고, 엔딩은 둘이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장식한다.  

햇빛은 눈부시고 하늘은 푸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날,
빨간 토끼와 빨간 모자는
향기로운 풀밭으로
한가로이 소풍을 나왔습니다...... 

불행한 결말로 규정지어진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행복한 이야기로 바꿔가는 자세는, 몹시 바람직했다. 빨간 모자 아가씨가 단지 엄마 아빠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대가로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엔 동화의 교훈이 너무 잔인하지 않던가.  

그런데 빨간 모자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난 배가 몹시 고파, 굶주린 늑대처럼!" 

아, 동화는 예쁘게 끝났는데, 어째 나는 좀 꺼림칙도 하고 좀 으스스하기도 했다.
소녀가 어리긴 하지만 인간인데, 빨간 토끼와 입장이 같을 수 있을까. 

둘은 의기 투합해서 이야기를 바꿔나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소녀의 마음이 바뀌면 토끼는 소녀의 식량이 될 수도 있다.
언제고 써질 빨간 토끼의 이야기에는 친구를 잘못 믿었다가 크게 당했다더라~ 뭐 이런 식의 우울한 결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뭐, 내가 너무 오버했다고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긴 하겠다.
사람이란 동물에 비해서 너무 추한 면모를 많이 보인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확장된 듯하다.  

원래 빨간 모자 이야기의 결말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신선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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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6-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인데도 저에게는 빨간 토끼가 어색해요.^^
색깔이 너무 빨간색이라 그런지 토끼가 귀엽게 안 보이고 무섭게 보입니다.ㅎㅎㅎ
전 하얀토끼가 좋아요.

마노아 2009-06-01 11:4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색해요. 빨간 토끼라니, 좀 징그럽기도 하구요.
저도 하얀 토끼가 예뻐요.^^

2009-06-0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