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구판절판


그 후 LA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갈 때마다 우찬이는 내년에 보자는 말 대신에 "이모, 내일 봐"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일'과 같이 짧은 시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면 헤어지는 마음이 덜 아쉽겠지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엉겁 속에서 하루는, 1년은, 아니 한 사람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봐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인지요.-51쪽

아버지가 계시는 천안 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도 알 수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말 같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52쪽

다시 삶의 무대에 올라선 나를 자축하고 싶었다. 선물 가게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카드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작가들의 명언 시리즈 카드가 있었는데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적힌 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59쪽

나는 목발을 짚고 다니는 덕에 누구나 다 쳐다보는지라 남의 시선이 별로 달갑지 않은데, 그 여자는 그 시선 때문에 그 많은 노력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러워서이고 나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하겠지만,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119쪽

-모든 사람은 '이 세상은 나 때 문에 창조되었다'라고 느낄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탈무드)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엘리노어 루스벨트)
-스스로와 사이가 나쁘면 다른 사람들과도 사이가 나쁘게 된다.(발자크)
-다른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에리히 프롬)
-'너만이 너다'-이보다 더 의미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셰익스피어)
-137쪽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연함과 용기, 당당함과 인내의 힘이자 바로 희망의 힘이다. 그것이 바로 이제껏 질곡의 삶을 꿋꿋하고 아름답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힘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가 무언으로 일생동안 내게 하신 말씀이었고, 내가 성실하게 배운, 은연중에 '내게 힘이 된 한마디 말'이었을 것이다. -141쪽

얼마 전 전신마비 구족화가이자 시인인 이상열 씨가 쓴 '새해 소망'이라는 시도 생각난다.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게 하소서."-159쪽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못 해서가 아니라 못 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신체적 능력만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비장애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서울 명혜학교 복도에는 윤석중 씨가 쓴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 있다.

사람 눈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
사람 귀 밝으면 얼마나 밝으랴
산 너머 못 보기는 마찬가지
강 너머 못 듣기는 마찬가지
마음눈 밝으면 마음 귀 밝으면
어둠은 사라지고 새 세상 열리네
달리자 마음속 자유의 길
오르자 마음속 평화 동산
남 대신 아픔을 견디는 괴로움
남 대신 눈물을 흘리는 외로움
우리가 덜어주자 그 괴로움
우리가 달래 주자 그 외로움-149쪽

내가 이제 죽어 심판대에 서 있고, 누군가 내게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나도 이야기 속의 여자처럼 '나는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선생이고, 누구의 이모이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등등'의 대답 말고 진정 내가 누구라고 답할 수 있을까?
누군가 '명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띈다'고 했다. 나도 삶의 '명마'가 되기 위해 이제껏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좀 더 좋아 보이는 자리, 좀 더 편해 보이는 자리를 위해 질주했고, 숨 헐떡이며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195쪽

"그래도 지금 내가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는 건 순전히 내 자유의지야. 여차하면 차 버리고 택시 타고 가면 되지. 길에서 끝없이 헤매는 것이 인생에서 끝없이 헤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204쪽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일이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 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 색다른 감정이 새로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또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연륜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풍부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실감이 안 난다. 삶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에 익숙해질 뿐이다.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일이나 악을 많이 보고 살다 보니 내성이 생겨, 삶의 횡포에 좀 덜 놀라며 살 뿐이다. -215쪽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이 들어가며 내가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드니까 자꾸 연로해지시는 어머니가 마음 쓰이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조카들이 더 애틋하고, 잊고 지내던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겐 ㅡ껴진다. 그러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남도 보인다. 한마디로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 간다고 할까, 조금씩 마음이 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선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자신뿐 아니라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선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금방이라도 싸움터가 되고 무너질지 모른다.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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