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 - Sunn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수애의 단아한 이미지를 참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배역은 해신에서의 정화 아씨였는데, 바닷가에서 최수종과 이별하는 장면에서의 명장면이 눈에 어른거린다. 수애는 쌍커풀이 속으로 약간 감춰져 있어서 늘 서구적인 얼굴이 대세인 배우 얼굴들 중에서는 또 구별되는 편이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은 늘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까지. 황산벌이 좀 별로였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그의 작품이 '님은 먼 곳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좋아하느나 수애가 나오고, 또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도 맘에 들고, 여러모로 기대작이었는데 들어간 제작비에 비해 흥행은 참패했고, 그래서 나도 아주 뒤늦게야 접하게 되었다. 감상부터 얘기하자면 나로서는 괜찮았다... 이겠는데, 극장에서 보았다면 조금 싱거웠을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든다. 솔직히.^^ 

삼대 독자인 박상길에게 시집간 순이. 상길은 대학을 졸업했고, 애인이 있었다. 맘에 없는 결혼을 하고 도망가다시피 자원 입대한 군대.  

그리고 시어머니의 등쌀에 떠밀려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오는 순이. 

그런 순이를 남편 상길은 늘 거리를 두고 대한다.  

"니 내 사랑하나?" 

이 한 마디가 물음이 전부였다. 그리고 오지 말라던 남편.  

애인의 변심으로 꼭지가 돌아버린 상길은, 고참을 패다가 함께 잡혀가고, "영창 갈래, 월남갈래?"라는 질문에 월남행을 선택한다.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그러니 고약한 시어머니의 횡포가 어찌 없었을까. 시집에서도 쫓겨나, 다시 친정에서도 쫓겨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시댁에 간 순이는, 월남까지 찾아가겠다는 시어머니를 달래느라 자신이 월남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민간인인 그녀가 대체 어떻게? 

순이의 장기이자 취미인 노래 부르기. 그렇다. 춤이 안 되는 순이는 가수로서 위문 공연단에 소속되어 월남으로 향한다. 물론, 거기에도 우여곡절이 있다. 사기꾼 짓을 다분히 했던 정만(정진영)을 믿고 가는 길이었으니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할 지경.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배우 정진영을 무척 좋아하나 보다. 장진 감독이 정재영을 무척 편애하는 것처럼. ^^ 황산벌, 왕의 남자, 즐거운 인생에 이어 님은 먼 곳에까지 단골 출연이다.  

옆의 사진은 영화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는데 아마도 실제 위문단 공연 사진이 아닐까 싶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이 눈에 들어온다.  

월남에 도착해서는 공연을 할 수 있는 클럽을 찾아야 했고, 또 밴드 멤버도 구했다.(기 보다는 사기친 돈을 갚으려면 같이 움직여야 했다..;;;) 



정경호는 자명고의 '호동 왕자'보다는 이런 배역이 더 잘 어울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도 꽤 괜찮게 나왔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뜨고 있는 배우다.^^;; 

수지큐를 열창하기로 되어 있던 첫 번째 무대는 실패로 끝난다. 야유하는 미군 부대를 뒤로 하고 도망치는 이들은 진로를 바꾼다. 한국 부대를 뚫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 성공이었다. 일단 한국말로 노래를 불러도 되니 팝송의 압박이 덜했고, 동포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더 편해지는 것.  

처음 왼쪽의 영화 포스터를 보고는 순이가 과격하게 옷을 입었구나(벗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더 파격적인 옷도 나온다. (어찌나 말라주셨던지, 무장 부러웠다는!) 

제대로 뭔가 되어가는 듯 보였고, 이제 곧 남편이 있는 호이안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베트콩의 습격을 받아 한국 진지는 초토화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밴드도 베트콩들에게 포로로 잡혀버린다.  

자신들은 한국인이라고, 그저 돈 벌러 왔을 뿐이라고 하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군과 똑같은 목적으로 왔다고. 

정만은 한국군이 평화를 수호하러 왔다고 항변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군이 실제로 알았든 몰랐든, 그들은 남의 나라 독립 전쟁에 끼어들어 돈 벌고 왔다라는 것을.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힘주어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전쟁의 잔혹성을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전투 씬의 리얼함과, 절박한 상황들에 대한 연출은 솔직히 부족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건 아마 감독의 역량 탓이라기보다 의도한 바라고 보여진다. 전쟁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과,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래서 순이는 당당했다.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돈 벌러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남편 찾으러 왔을 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옷도 벗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듯하다. 도대체 순이가 그렇게까지 해서 남편을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설마 순이가 남편을 전쟁터까지 쫓아올 정도로 사랑했단 말인가. 그 남편을 만나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영화를 보기도 전에 결말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순이가 보여준 싸대기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오기'로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 아들 귀한 것만 알고 있고, 며느리를 아들 만들어줄 대상으로만 여기는 시어머니에 대한 항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친정 아버지, 그리고 말 한 마디 없이 전쟁터로 훌쩍 떠나버린 괘심하고 무책임한 남자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험한 여정에서 노래하며 남편을 찾던 순이는,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던 듯하다. 남편은 자신을 험한 전쟁터에서 앞을 뚫고 나가게 해줄 목표이자 기댈 언덕이었다. '님은 먼 곳에'를 부르며, 사랑한다 말할 걸~하고 부르는 순이에게서는 "니 내 사랑하나?"라는 남편의 물음에 그 어떤 답도 못해줬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남아 있다.  

전쟁은 로망이 아닌 것을, 피와 살이 튀는 그 살육의 현장에 남편 찾아 삼만리를 외치는 순이의 행보는 지극히 영화스럽다. 게다가 그 일병 박상길을 찾아내기 위해 군인들이 명령에 복종하여 움직이는 장면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다분히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영화이므로, 관객은 너무 박하게 흠을 잡을 필요는 없겠다.  

수애가 실제로는 가수 데뷔도 준비했었다는 기사를 본 듯한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수해도 좋을 만큼 노래를 잘 불러서 그의 가수 연기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특히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는 작품 속 순이의 마음을 다 담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애잔하고 절절하게 들렸다.  

정만이 베트콩의 포로로 있다가 다시 미군에게 붙잡혔을 때 두려움에 벌벌 떨며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를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의 노래에는 '계산'이 없었다. 잘 보여서 살아남기 위한 의지가 아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움의 노래였으니까.  

이준익 감독의 다음 작품은 박흥용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다. 영화 제목은 원작의 한글 맞춤법과 달리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으로 쓴다. 주인공은 황정민과 엄태웅. 엄태웅은 특별출연에서 이제 주연으로 상승했나보다.^^  

근데 주 주연은 황정민일 듯.ㅎㅎㅎ 

그리고 수애는 조승우와 함께 찍은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다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작년에 찍은 것 같은데 왜 아직 개봉을 안 할까??? 

명성황후 역할이라는데, 그 단아하면서 단단한 이미지가 잘 어울릴 듯하다. 그래도 인물을 너무 미화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베트남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이 영화를 생각했는데, 사실 나의 베트남 공부에 별 도움이 안 될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알고서 봤지만 역시 도움은 안 되고... 그래도 그게 꼭 나쁘지는 않은 즐거운 영화 감상이었다. 수애가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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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5-1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신에서 본 정화 아씨를 좋아해요! 해신 마지막회 너무 슬펐어요ㅠㅠ
제가 한국 영화를 아예 못 보지만 이곳에서 영화 리뷰라도 읽게 되어 너무 기뻐요.^^
그리고 저렇게 사진까지 올려주시니 더 고맙고요...

마노아 2009-05-16 14:26   좋아요 0 | URL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접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만나면 반가운가봐요. 보는 족족(?) 더 열심히 쓸게요. 해신 때만 해도 최수종을 보며 잘 생겼다! 감탄했어요.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많이 보이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추자가 부르는 님은 먼곳에가 나중에 나온 조관우 것보다 부르기가 더 낫더군요.제 애창곡!

마노아 2009-05-16 21:46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조관우 버전을 들어 아는 거였군요. 김추자 버전은 못 들어봤어요.
지금 검색했는데 장사익 버전이 있네요. 듣기 좋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취입순서는 김추자 조관우 장사익 순이에요.김추자는 한국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가수지요.수애가 영화에서 부른 또다른 노래 간다고 하지마오는 김정미 노래인데, 김추자 김정미 모두 신중현이 키운 가수지요.물론 두 노래 모두 신중현 작곡.제가 정말 아는 게 많지요? 으흐흐...

마노아 2009-05-17 23:21   좋아요 0 | URL
오, 장사익이 가장 마지막 버전이군요. 전 들어보니 수애 버전이 제일 좋았답니다.ㅎㅎㅎ
간다고 하지마오...는 어떤 노래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검색해 봐야겠네요. 오, 역시 신중현이군요! 팔방미인 노이에자이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