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 베트남과 친구되기
김현아 지음 / 책갈피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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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는 어떤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 베트남은 그저 뜨거운 밀림의 나라였을 뿐이었다.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던 여러 사실들도 그저 '사실'일 뿐이었다. 그건 구체적으로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단지 그렇게 누군가였고, 무엇인가일 뿐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자 처음엔 경이로움을 느꼈고, 다음엔 감탄을 했고, 그리고 그 다음엔 미안하고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어쩌다가...... 

이 책은 '나와 우리'라는 시민 단체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세 차례 베트남을 답사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으며 그 사이에 이들이 가졌던 연민과, 깨달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할 유산이기도 했다.  

'나와 우리'에서 집중한 것은 '베트남전'이었고, 그곳에서 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군의 '기억'이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과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전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거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베트남 참전에 대한 보편적인 기억은 '용사'다. 귀신 잡는 해병대의 활약상. 나라를 경제 위기에서 구한 역군들. 참전의 대가로 우리가 받은 돈은 10억 불이었다. 맞다. 그 돈으로 우린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그 길을 따라 수출 대국으로 열심히 성장했다. 얼마만큼은 사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그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부터 생각했어야 마땅했다. 베트남전은 '독립' 전쟁이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지난한 식민지 시절을 겪었던 베트남 민중들의 한서린 독립 전쟁이었는데, 우린 거기서 명분 없는 미국의 손을 들었다. 한국 전쟁의 기억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들 말하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그건 박정희 정권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지 보은의 대가도 아니었고 우리가 치렀던 기회비용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한 선택도 결코 아니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10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한진 등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10억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벌어들인 것만 계산할 뿐, 우리가 치러야 했던 대가나, 파병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거둘 수 있었던 경제적 성과를 의미하는 기회비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의 용병이었다는 역사적 오명은 영원할 것이고, 이러한 명분이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인권탄압을 자행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이것을 정당화하는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베트남전에서 벌어들인 10억 달러는 박정희의 독재를 공고화하고 군사 문화를 이 땅에 뿌리 깊이 심는 데 기여한다. 장기집권, 의문사, 고문, 전두환의 집권과 광주학살 등이 베트남전으로 배태되었다고 한다면 그 10억 달러는 이후의 한국현대사가 두고두고 갚아야 할 부채가 된 셈이다. (110)
 
   

베트남인들에게조차도 상처뿐이었던 승리를 준 그 전쟁에서 우리는 32만 명의 젊은이를 보냈다. 그 중 5천 명은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안고 지금도 살아간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고엽제의 저주를 대를 이어 물려주고 있고, 전투 중에 민간인을 학살하기까지 했던 처참한 기억을 가진 군인들은 그 상처의 외상을 끌어안은 채,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괴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다. 그 고통이 그들만의 것이었던가? 그들의 가족은 물론이요, 희생된 유가족을 가진 베트남 민중들의 절망과도 한 길에 놓여 있다.  

'나와 우리'가 만난 민간인 학살 마을의 사람들. 그들은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열자'라는 당국의 지령에 따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게 중에는 좋은 의도로 찾아간 이들조차도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증오에 싸여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 그 군인과 지금 이 시민 운동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알고 고마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뿐인가. 게 중에는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 뭣도 모르고 명령에 따라야 했던 어리디 어렸던 그 사람들을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희생을 당했던, 분노를 품었던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그 동안 한국 정부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자행했던 비인간적인 행위를 모르쇠로 일관했고, 희생 지역에 위령비라도 세울라치면 과거의 행적은 덮은 채 '시혜'의 대상으로만 접근을 하고, 정작 필요한 곳이 아닌 잘 보이는 곳에 학교를 지으려는 등의 전시행정만 보였을 뿐이다. 그건 우리가 그토록 비난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뭐가 다른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과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왔지만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잘못을 저지르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식민지살이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알던 우리가 베트남에서 자행했던 패륜적인 행위들, '국가'라는 이름으로 군림하고 있는 포악한 권력앞에 짓밟힌 광주의 기억, 대추리의 기억 그리고 용산의 기억. 정부는, 그리고 국가 권력은 모든 영광과 이익은 자신의 손아귀로 끌어당기고, 모든 희생과 비극은 국민 '개개인'의 것으로 돌려버린다. 월남에서 베트콩을 쏘아 죽이고 그 대가로 훈장을 거머쥔 참전 군인이 그랬고, 자신이 쏘아죽인 베트남 민간인의 어머니의 눈빛을 보고 돌아와 그 참혹함에 일생을 방황하며 사는 가엾은 군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거나, 아니면 그 죄값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생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야 했다. 어느 쪽도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권력은 정신과 일상을 교묘하게 조작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굴종하게 만들고 일상 생활의 미세한 국면에까지 지배력을 행사한다. 제도교육과 미디어, 다양한 상징을 통한 지배논리는 개인의 일상을 치밀하게 파고들어와 삶 자체를 그들의 논리로 내재화한다. 은밀한 폭압적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이 논리들을 내면화한다. 무엇이 억압인지를, 무엇이 자발적 복종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일상의 파시즘은 우리 사회의 소수집단들과 제3세계 민중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내 몸 속에 면면히 흐르는 반공 이데올로기, 자기 검열, 체제 순응적 태도, 가부장성, 외국인에 대한 이중 잣대, 무관심....... 내면화되어 정신과 의식을 지배하는 이 일상의 폭력, 일상의 파시즘을 직시하지 않는 한 나 역시 언제 베트남 사람들을 죽일지,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박해하는 데 일조할지 알 수 없다. (280)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 전쟁이 옳은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들의 만행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반성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린 너무나 오래도록 진실을 몰랐고, 외면했고, 또 방조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녹슬어버린 올바른 양심의 부재를 아직도 겪고 있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에 참전을 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한국에선 여전히 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러 갔던 귀신 잡는 해병대에 경의를 표했고, 아무도 베트남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참전군인은 한 집안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고, 경제발전의 주역이기도 했다. 월남전의 성격에 대해 말하는 이도 없었고,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그와 함께 참전 군인들이 겪어야 했던 혼돈과 갈등 또한 묻혀졌다. (177)  
   

때로, 시간이 해결해 주는, 덮어두어야 더 바람직한 상처도 있다. 그렇지만, 베트남 참전에 대한, 그리고 학살에 대한 기억은 마땅히 수면 위로 올려서 공론화해야 하는 업보였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 우리가 상처입혔던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마땅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가 염원하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명령 때문이었다고,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혹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죄가 없어도 책임은 있다는 것. 그건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는 것.  우리가 풀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이 책은 제목이 책의 절반을 얘기해 준다. 전쟁은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서 또 다른 2차 피해를 남긴다. 해석하지 못하는 전쟁은 우리에게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만을 남긴다. 우리는 전쟁의 기억 속 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으면서 많이 울컥했다. 아프고, 또 아프다. 모두가 모른 척하고 살아갈 때 앞장 서서 베트남을 찾아가고, 그 속에 학살로 희생된 유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사과하는 '나와 우리'가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또 대견했다. 훗날 내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관광 이상의 것을 보고 올 수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나와 우리' 그리고 이 책의 공로일 것이다.  

다 좋은데, 뒤로 갈수록 오타가 많고 유독 띄어쓰기 오류가 많은 것이 이 책의 유일한 흠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생채기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이 책이 품고 있는 메시지와 표현하는 가치는 지극히 아름답다. 저자 분이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절멸이 지구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장면이 나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들 덕분에 인류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역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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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5-1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거뉴스 특종이네요~ 축하!^^

마노아 2009-05-16 11: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한약 편(?) 당선되셨지요.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