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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온 손님 ㅣ 그림책 보물창고 5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그림책이다. 며칠 전 부처님 오신 날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아쉬움이 살짝 묻어난다.
높디높은 티벳 고원, 어느 깊은 골짜기, 작디작은 마을에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연날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아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저 은하수 너머의 다른 세상을 꼭 가보고 싶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아이는 자라서 나무꾼이 되었고, 여전히 산 너머 다른 나라, 더 넓은 바다와 많은 도시 속에 사는 다른 사람들을 궁금해 하며 그들을 언제고 꼭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늘 바빴다. 열심히 일을 해사 가족들을 먹이고 보살펴야 했으니까.
그는 아주 오래오래 살았지만, 결국 그 골짜기를 떠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그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흔히들 '천국'이라 일컫는 이 끝없는 우주의 일부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생명으로 거듭 태어날 것인지.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했던 자신을 기억해냈다.
그는 무수한 은하 중에서 소용돌이 치는 아름다운 은하계를 골랐고, 수많은 행성 중 태양계를, 그리고 다시 그 중에서 지구를 골랐다.
지구라는 행성 안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물 종 속에서 그는 기어이 '인간'을 골랐고, 수많은 종족 중에서 피부가 누런 사람들을, 그들이 살고 있는 높은 고원과 푸른 골짜기를 골랐다.
이제 짐작이 가는가? 그는 자신이 살았던, 전생의 그 삶을 다시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개 너머, 산 너머, 그리고 우주 너머의 다른 세상을 동경했지만 자신이 살았던 그 삶을 다시 택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지켜보자.
그는 자신의 부모가 될 수많은 젊은 부부들을 보았다. 모두들 사랑이 넘쳐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유독 그의 마음을 이끄는 미소를, 편안함을, 따뜻함을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남자 아이로 태어날지, 여자 아이로 태어날지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지난 생에 남자 아이로 살았던 것을 기억해내었다.
그러니 이번엔 여자 아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성별이 달랑 둘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 사내는 분명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높디높은 티벳 고원, 어느 깊은 골짜기, 작디작은 마을에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연날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종교적인 느낌이 가득하긴 하지만, 그보다도 철학적인, 삶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나 자신이, 결국엔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리고 선택해낸 존재라고 표현한다면, 이 책의 줄거리가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현실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서 그건 고맙기도 하고 혹은 억울하다고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겠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산다면, 적어도 같은 생을 반복 선택할 만한 우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저렇게 쓴 것은 그림책 용 모범답안이고,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의 삶으로 족하며, 그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태어날 기회를 잡는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또 너무 비참한 거겠지? 그러니 한 번으로 족하다. 결단코!
그나저나 원제도 '지구별에 온 손님'인지는 모르겠는데, 제목이 너무 근사하다. 제목 덕에 별점 하나 더 먹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