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의 변신은 무죄 - 지오데직 돔 |
[제 908 호/2009-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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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게임이나 만화책을 끼고 있던 아들 녀석이 주말인데도 방에서 끙끙거리며 책상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 건축씨에게는 낯설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무얼 그리 열심이니?”
“환경오염에 관해서 작문해야 해요.”
그때 엄마가 거든다.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생기는 지구온난화 같은 걸 쓰면 되잖니?”
아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축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탄소라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란다. 탄소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아빠, 탄소가 아름답다니요?”
“탄소가 아름답다는 건 네가 작년에 아빠한테 한 말인데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구나? 작년 어린이날 우리 가족이 놀이동산에 놀러 갔을 때 네가 둥근 건축물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했잖니?”
“에이 아빠는, 그 건축물이랑 탄소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내도 궁금한 모양이다.
“어째서 탄소가 아름다운지, 또 탄소와 그 건축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제부터 들려주마. 네가 작년에 놀이동산에서 본 둥근 건축물 같은 것을 지오데직 돔(Geodesic dome)이라고 한단다. 지오데직 돔은 미국의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Richard Buckminster Fuller, 1895-1983)가 디자인했지. 그는 1940년 말 지오데직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지오데직이라는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란다.”
“아! 벅민스터 풀러라는 건축가가 처음으로 그렇게 둥근 건축물을 만들었어요?”
“그건 아니란다. 지오데직 돔처럼 둥글게 건축물을 만든 것은 1923년 독일의 카알짜이스(Carl Zeiss) 회사에서 지은 천문대가 세계최초란다. 이 회사는 독일 박물관장 뮐러(Van Muller)와 천문학자 볼트(Max Wolf), 공학기술자 바우에르스펠트(Walther Bauersfeld)등의 사람들과 협력해서 1912년에 짓기 시작했는데, 세계 1차대전 때 중단되었다가 종전 후 다시 시작하여 1923년에 완성하였지.”
“그럼 풀러라는 건축가는 그 둥근 모양이 예뻐서 그 모양을 흉내 낸 건가요?”
“풀러가 지오데직의 개념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가장 안정된 기하학형태인 단일삼각형(omnitriangulated)이 표면을 덮은 구조체라는 점이지. 즉, 다시 말해서 어떤 닫혀진 공간을 만들 때 최소의 외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란다. 그러니까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해. 건축에서 요구하는 3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셈이지.”
대화를 묵묵히 듣던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그래서 탄소와 돔이 무슨 상관있다는 말인지는 설명이 안 되는 걸요?”
“자,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1985년 서섹스(Sussex) 대학의 로버트 F. 컬(Robert Curl), 해럴드 W. 크로토(Harold Kroto)와 라이스(Rice)대학의 리처드 E. 스몰리(Richard Smalley)라는 학자는 풀러린(Fullerene)이라는 탄소원소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했단다.”
“풀러? 풀러린?”
아들 녀석이 알겠다는 듯 되뇐다.
“그렇지! 눈치 챘구나. 탄소 동소체인 풀러린이 마치 지오데직 돔 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건축가 풀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그런데 풀러린이 돔형(球形)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타원형, 튜브형, 평면형 구조가 있는데, 속이 빈 구형(돔형)을 버키 볼(buckyballs), 벅민스터풀러린(Buckminsterfullerene) 또는 탄소 원자 60개로 구성된 분자라고 하여 ‘C60’이라 부르고, 튜브형태는 카본 나노튜브(Carbon nanotubes) 또는 버키 튜브(buckytubes)라고 부르지. 또 평면형 판상구조는 그래핀(Graphene)이라 부른단다. 풀러린의 구조는 마치 6각형의 벌집처럼 연결되어 쌓여 있는 점에서는 흑연(graphite)의 구조와 유사하고, 평면형을 제외한 플러린 구조는 모두 6각형 이외에 5각형 구조를 사용하여 3차원 구조를 가진단다. 여기서 흑연, 즉 그래파이트 한 겹을 그래핀이라고 부르지.”
“조금 더 설명을 해볼까? 컴퓨터의 최고중요부품인 실리콘 CPU를 앞으로는 그래핀으로 대치한다는구나. 또한 탄소 나노 튜브는 우주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을 수송하는 엘리베이터 박스의 역할을 할 계획이란다.”
“와! 정말 탄소는 우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네 숙제도 무조건 탄소라는 물질이 나쁘다는 쪽으로 쓰기보다는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쪽으로 쓰는 게 어떨까 한다.”
“예, 아빠 저는 이제부터 탄소를 좋아하기로 했어요.”
“그래? 네 엄마는 예전부터 탄소를 제일 좋아했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나?”
“여보, 내가 탄소를 제일 좋아한다니요?”
“하하.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다이아몬드도 사실 모양 바꾼 탄소에 불과하거든.”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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