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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와 소새와 개미 ㅣ 우리 작가 그림책 (다림) 4
최민오 그림, 채만식 글 / 다림 / 2003년 2월
평점 :
이 책이 꽤 보고 싶었는데 계속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네 집에 갔더니 이 책이 있는 게 아닌가! 냉큼 들고 와버렸다.^^
개미는 알겠건만, 대체 왕치는 뭐고 소새는 뭔지 궁금했다. 그림을 보면서 왕치는 큰 여치고 소새는 작은 새인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왕치는 국어사전 검색해 보니 방아깨비의 큰 암컷이란다. 내용상 암컷 같아 보이진 않지만, 여튼... 곤충 중 한 마리라는 것! ^^
옛날 옛적, 개미와 소새와 왕치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개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부지런하고 일을 잘 했고, 소새는 성깔이 좀 있었고 야박스런 구석은 있었지만 재치있고 부지런해서 제 앞가림은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놈의 왕치는 파리 한 마리 건드릴 힘도 없는 약골에 맨날 놀고 먹기 일쑤. 그 와중에 뱃골은 커서 남들 배나 먹어 치웠으니, 개미야 그냥저냥 괜찮은 눈치지만 소새는 여간 왕치가 미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가을, 사흘 내리 잔치를 열어 각자 하루씩 잔칫상을 차리자는 제안을 하였으니 주변머리 없고 요령 없는 왕치를 골려주기 위함이었다.
첫날 개미는 새참 내가는 아주머니 발을 콱! 물어버려서 그 광주리의 음식을 모두 식탁 위에 올렸고,
둘째 날 소새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낚아 채서 역시 푸짐한 상차림으로 잔칫상을 꾸몄다.
문제는 셋 째 날을 맡은 왕치.
힘도 없고 요령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얼굴만 두꺼운 이 왕치는 도저히 잔칫상을 차릴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지만, 번번이 쫓겨나기 일쑤고, 경을 치기 마련.
급기야는 소새처럼 잉어 사냥을 하겠다고 설치다가 오히려 잉어가 꿀꺽 삼켜 때 아닌 요나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녀석, 여간 딱한 게 아니란 말씀. 그나마 잉어가 한 입에 삼켰기에 망정이지 씹었으면 어쩔 뻔했는가...ㅠ.ㅠ
이 책엔 가끔 컬러 그림이 나오다가 흑백 그림이 나오는데 장면 전환과 분위기 전환에 아주 효과가 좋다.
집에서도 친구들이 좌불안석.
이리 저리 찾아 헤매었지만 왕치 소식은 그저 깜깜할 뿐.
결국 왕치를 찾기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소새는 물 위로 얼굴을 들이민 잉어 한 마리를 꿰차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개미와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어찌 되었을까? 짐작했듯이, 바로 왕치가 잉어 뱃 속에서 튀어나왔던 것!
구사일생으로 살아놓고도 자기가 잉어를 잡아왔다고 뻐기는 뻔뻔한 왕치!
소새는 그에 진짜 열이 받고 마는데...
그 바람에 주둥이가 댓발은 나와 버렸고, 그래서 짤막했던 부리가 쑤욱 길어져 버렸다.
바로 이렇게
뿐인가?
공짜만 밝히던 왕치는 이마의 땀을 쓱쓱 닦다가 그만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말았고, 그 모습을 보다가 깔깔 웃던 개미는 그만 허리가 '잘록' 부러지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몸매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책은 채만식이 썼다. 문학 교과서에서 보던 그 이름의 작가가 이런 풍자적 우화 소설을 썼다는 것이 신선하고 신기하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저들 셋이 여전히 한 집에서 살았는지, 아니면 관계가 깨져서 따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 벗겨진 머리가 아직 회복이 안 됐고, 저때 길어진 부리가 여전히 길며, 저때 잘록해진 허리가 아직도 잘록한 것은 변함이 없겠다. 재밌고 우습고, 흥이 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