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지음, 박건웅 그림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절판


우리나라 꽃

산에 가면
산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고요
들에 가면
들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요
어두운 밤하늘엔
별들이 도란도란 빛나고요
우리나라엔
우리들이 반짝반짝 빛나요

산에는 산꽃
들에는 들꽃
밤하늘엔 별꽃
우리나라엔
우리들이 꽃이에요-14쪽

큰물 지나간 강가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가 치워줍니다

하늘에 먼지가 끼면
비가 땅으로 가져옵니다

두더쥐가 죽으면 썩고
썩은 것들은 흙이 가져가고
흙은 풀과 나무를 키웁니다

큰물 지나간
저 강가에 비닐과 농약병은
누가 가져갑니까-34쪽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비가 서 있고
하루 종일 나무가 서 있고
하루 종일 산이 서 있고
하루 종일 옥수수가 서 있고

하루 종일 우리 아빠 누워서 자네-42쪽

우리 아빠 시골 갔다 오시면

우리 아빠 시골 갔다 오시면
시골이 다 따라와요

이건 뒤안에 상추
이건 담장에 호박잎
이건 앞마당에 토란 잎
이건 위꼍에 애호박
이건 강 건너 밭에 풋고추
이건 장광에 된장
이건 부엌에 고춧가루

우리 아빠 시골 갔다 오시면
시골이 다 따라와요
맨 나중에는 잘 가라고 손짓하시는
우리 시골 할머니 모습이 따라와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44쪽

강 건너 콩밭

오늘도
학교 갔다 와서
아기 업고 강 건너 밭에
아기 젖 주러 갑니다

밭에 가면
어머니는 콩밭이 훤하게
지심을 매다가
내가
엄마!하고 부르면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배가 을매나 고팠을까 하며
수건 벗어 먼지 털고
밭가로 나와
아기 젖을 줍니다

아기는 두 손으로
엄마 젖을 움켜쥐고
젖을 빨며
까만 눈으로 엄마 눈을 바라봅니다
아기 눈엔 엄마가
엄마 눈엔 아기가 들어 있습니다

젖을 다 먹이고
아기 업고 돌아오면
아기는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길가에 풀잎을 뜯기도 합니다
나는 풀꽃을 꺾어
아기 손에 쥐여줍니다

집에 와서
아기를 내려놓고
강 건너 콩밭을 보면
콩들이 엄마 뒤를 따라
올망졸망 자라고
내가 집에 다 갔나 못 갔나
고개 들고
우리 집 보며
또 자랍니다-60쪽

방학

학교는 뭘 할까

운동장은 뭘 할까

교실은 뭘 할까

내 책상 내 의자는 지금 뭘 할까
미끄럼틀 철봉은 서서 뭘 할까

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내 짝은 숙제 다 했을까

학교는 지금 뭘 할까-107쪽

할머니 집에 가는 길 - 봄

할머니 집 가는 길에
산벚꽃이 하얗게 피어 있어요

할머니 집 가는 길에
진달래꽃 붉게 붉게 피어 있어요

할머니 집 가는 길에
동네마다 집집마다
살구꽃이 하얗게 피어 있어요

할머니 집 고샅길에
민들레꽃 피어 있고요
할머니 집 들어서면
오냐온냐 내 새끼 많이 컸구나
내가 내가 어여쁜 꽃이 됩니다-111쪽

할머니 집에 가는 길 - 여름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매미가 웁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
염소가 웁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
꾀꼴새가 노랗게 울며 납니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며
할머니 할머니 찾아 부르면
아이고 내 새끼 더 많이 컸구나
보고 싶은 내 새끼
할머니가 웁니다-112쪽

할머니 집에 가는 길 - 가을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들국화가 피어 있는 길

할머니 집에 가는 길
산마다 단풍물이 곱게 물든 길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길

할머니 집에 가는 길
알밤들이 툭툭 떨어지는 길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마을마다 지붕에
빨갛게 고추가 널려 있는 길

할머니 집에 가는 길
할머니들이 허리 굽혀
콩을 거두는 길-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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