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을 수 없는 과학자, 멩겔레 |
[제 901 호/2009-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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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브라질의 칸디도 고도이(Candido Godoi)라는 독일인 마을에서 여성 5명이 임신을 할 경우 그중 1명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쌍둥이를 출산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나치 과학자 요세프 멩겔레의 실험 결과가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았다. 평균적으로 여성 80명이 임신할 경우 그중 1명이 쌍둥이를 출산하는 확률에 비하면 꽤 놀라운 쌍둥이 출생률이다. 도대체 요세프 멩겔레가 누구기에 한 마을의 쌍둥이 출생률을 높였다고 추측할만한 위력을 지닌 걸까?
요세프 멩겔레(Josef Mengele, 1911~1979) 박사는 독일 친위대 장교이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 나치 강제 수용소의 내과의사였다. 그는 수용소로 실려온 수감자 중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강제노역에 동원할지를 결정하였으며 수용소 내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였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가 유대인에게 했던 생체실험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너무나 악독해서 인간의 행동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한 그의 별명은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알려져 있다.
당시 히틀러로부터 나치독일을 위한 완벽한 인종을 만들라는 임무를 받은 멩겔레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 독일혈통 아리안족의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유전학적으로 쌍둥이를 출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른바 우생학과 나치 국가주의 이념에 그가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뮌헨에서의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귄츠부르크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한 그는 뮌헨 대학(University of Munich)에서 약학과 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1935년 유대인 하층민들의 인종적 차이점에 대한 논문을 작성,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대학(Frankfurt University)의 유전 생물학 및 인종 위생학 연구소에서 또 다른 나치 과학자 오트마 폰 페르슈어(Otmar Von Verschuer)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그는 1938년 ‘갈라진 입술과 구개에 관한 가족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치 우생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시기의 그의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뮌헨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전후 1964년 그의 학위를 취소하였다.
그는 학업도 우수했고 외모도 출중한데다가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장래가 촉망되는 인텔리였으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끔찍한 학살자로 변했다. 충성심과 출세욕이 강했고 뮌헨 대학에서 약학과 의학,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우생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치가 주장하는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우생학 연구에 맹목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우생학과 정치 이데올로기가 만난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 선두에 있었던 멩겔레는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 있는 동안 수감자들을 이용하여 그의 유전학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다. 그는 특히 쌍둥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들을 선별하여 특별 병영에 따로 수용하였다. 멩겔레는 또한 어린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암(Noma)이라는 질병을 연구하였으며, 수암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였지만 이 질병이 영양실조 등으로 면역체계가 무너진 아이들에게 주로 발병하여 홍역과 결핵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멩겔레는 수암이 인종적 열성요소 때문에 발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지만 이 또한 실패하였다.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동안 멩겔레는 여자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것 역시 우생학적으로 순수 독일혈통의 쌍둥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였다.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따르면 전후 독일 내에서 가명을 쓰며 숨어지내던 멩겔레는 남미로 도주했지만 그곳에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1960년대 초반 칸디도 고도이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는 독일인들이 고향을 떠나 함께 모여 살았는데 멩겔레가 여성들에게 새로운 약품을 먹이는 등의 의료행위를 하면서 이곳의 쌍둥이 출생률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사실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 사건 때문에 우생학이 나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우생학은 1883년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학문이다. 골턴은 1874년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전학적으로 인류를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우수한 소질을 가진 인종을 증가시키고 열악한 소질을 가진 인종을 감소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은 그 맥락이 끊겼지만 과거 우생학에 기초하여 정신분열증 등의 유전성 정신병이나 유전성 기형을 가진 환자들을 임의로 단종시키는 우생법안이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었고, 미국에서는 알코올중독 환자나 범죄자까지 범주에 포함해 강제로 단종시키는 단종법이 존재하였으나 다수의 안전과 복지 추구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려 1970년대에 시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본성 대 양육 이론은 인간의 행동이 유전에 의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이론과 양육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이론 간의 논쟁이다. 초기에는 철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이루어졌으나 다윈이 펴낸 종의 기원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보편성이 입증되면서부터 극단으로 치달았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의 양육옹호론과 나치주의의 본성옹호론으로 대립되었고 현재에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멩겔레는 남미로 도주한 이후 아르헨티나를 거쳐 1959년 브라질로 이주하였으며 사고로 익사했다. 멩겔레가 나치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은 우생학 연구라는 자신의 의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고 비열한 짓이었다.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눈이 먼 명분을 가진 과학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교훈이다.
글 : 김형근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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