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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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표지의 껍데기 위쪽으로 작은 제목이 보이는데, 그 제목 위에 더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문구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한 때 나는, '진지한' 것의 열혈 팬이었다. 진지한 영화, 진지한 드라마, 진지한 만화를 읽었고, 진지한 사람들이 쓴 책들은 소화도 못할 거면서 일단 사고 봤다. 무언가 꼭 남겨야만 제 가치를 다 해낸 것 같아서 들인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겼던 나는, 최근에는 가벼운 것을 더 선호한다. 따지고 들면 정말 말도 안 되고 문제작이기까지 한 꽃보다 남자도 즐겁게 보고, 오늘은 무거운 기분을 떨쳐내려고 '쇼퍼홀릭'을 보았고, 만화책도 '흑집사'나 '칼바니아 이야기'에 열광했다.  

일부러 그렇게 애썼다기 보다는, 그래주는 게 자연스러웠다.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힘이 드는데, 머리 속에 꾸역꾸역 무겁고 버거운 이야기들을 집어넣을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은 머리로 이해하면서 '그래, 그렇지, 그래야 해...'하면서 반드시 '하지만......'이런 말들이 따라 붙는다.  

다 핑계라고 해도 좋다.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래야 숨 좀 돌릴 것 같았다. 그랬기에, 이 책이 반가웠다.  

공지영 작가의 책은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다섯 번째 만남이다. 내가 읽은 그녀의 책이 모두 무거워 죽겠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은 제목처럼 그 중 가장 가벼운 책임에 틀림 없다.  

'가볍게'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작가는 가벼운 소재로 가볍게 말하고 '유머'를 전달하기 위해서 무지 애를 썼다. 그래서 앞부분을 읽을 때는 흠....하며 뜸을 들이게 되었다. 하나도 안 웃긴데...... 이렇게 중얼거리게 만드는 머뭇거림. 그래도 좀 더 읽어보자...하며 책장을 넘기니 역시 내공은 무시 못하는지라, 어느 새 작가가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껴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몰아서 읽기보다 가볍게 즐기면서 읽기 위해서 나는 늘 자기 전에 몇 쪽 씩만 읽었다. 그러니까 한 주 분량의 원고(이 책이 매주 기고된 원고가 맞다면!)만 소화시킨 것이다. 야금야금. 그랬더니 더 맛있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작가의 독특한 지리산 친구들 이야기들이 재밌었고, 작가의 뚜렷이 구별되는 성향을 지닌 세 아이들 이야기가 즐거웠다. 인간 공지영과, 작가 공지영, 여자 공지영, 딸로서의 공지영 등이 모두 신선하면서 따스하게 다가왔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엄마 공지영이었던 듯하다. 작가는 소설가 공지영이라는 타이틀을 더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해 보고, 아이를 키워본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가 써낼 수 있는, 표현해낼 수 있는 글의 깊이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서로 다른 '세계'로 느껴진다.  

이 책의 원고 내용이 한겨레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실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그 계절, 그 사건 때의 일상들이 자연스레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뉴스거리'라는 게 사실 즐겁고 재미난, 혹은 교육적인 내용이 거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니까.  

가끔 한겨레 신문을 통해서 기고된 원고를 보긴 했지만 꾸준히 본 게 아닌 나는, 감사와 공감의 댓글 하나 남겨보지 못했다. 그냥 이 자리를 빌어 원고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다는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버겁고 무겁고 힘든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위로가 되었다.  

덧글) 유행처럼 띠지가 표지 역할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라서 띠지를 벗겨내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색깔 조합은 띠지가 있는 것이 좋지만, 이런 건 전부 다 책의 단가만 올려주고 환경적으로도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어려운 경제 사정을 반영해서 출판사들이 띠지 안 만들기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건만, 경제가 어려우니 한 권 팔 때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다 함께 띠지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자신들도 이런 호칭들이 낯설었다고 했다. 회사를 창립한 회장에게까지 "지영님."하고 부르자니 약간 민망한 감도 없지 않았단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효과를 발휘하는 시간은 회의 시간이라고 한다. 예전의 회사 같았으면 분명 사장님 의견에 반대되는 생각이 있어도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호칭을 "지영님." "철수님." 하고 나니까 왠지 말이 자유로워지고, 말이 자유로워지니까 생각이 자유로워지더라는 것이었다.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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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3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교롭게도, 이 책 전에 마지막에 읽은 에세이집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다. 난 에세이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

무스탕 2009-04-0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소리 하나..
이벤트 당첨 명단은 어제 봤는데 오늘 축하드리네요. 많이많이 축하해요~ ^^*)

마노아 2009-04-01 10:47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감사해요. 부비부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