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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과거 한국전에 참전했었던 월터 코왈스키. 자식과 이웃과도 거의 단절된 채로 살아오던 그는 아내의 장례씩 때에나 성당을 찾는, 아주 완고한 성격의 사나이다. 아내는 죽으면서 신부님께 남편의 참회를 이끌어줄 것을 당부하였고, 27살의 신참내기 신부님은 무척 애를 쓰며 월터를 설득하지만 월터는 고해성사 자체를 거부한다.
집 앞에는 언제나 성조기가 펄럭이고, 포드사에서 내내 일했던 그는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큰 아들이 일본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긴다. 이웃집에 이사 온 동양인 가족들을 보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때로 욕도 하고 침도 뱉어버리는 이 꼬장꼬장한 사내.
그에게는 멋드러진 자동차가 한 대 있는데, 1972년에 직접 조립한 후 관리 상태 완벽한 '그랜토리노'가 그것이다. 철없는 손녀 딸도 탐을 내고, 오랜 동네 지기 이발사도 탐내 하고, 동네 갱들도 눈독 들여 마지 않는 그런 자동차다.
옆집에 사는 몽족 아이 타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황하는 이 아이에게 친족이기도 한 몽 갱단이 접근하고, 그들의 강요에 의해 타오는 그랜토리노를 훔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를 하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타오의 누나 수와 월터는 말이 통하는 친구 사이가 되고, 타오도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보상하려고 애쓰면서 월터는 이들 가족과 점차 가까워지고 만다.


언제나 집 앞 의자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인상을 찡그리는 게 대부부이었던 무료한 사내에게 시끌벅적한 이웃들의 출몰(!)은 꽤나 고역이었지만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처음엔 고마움의 표시로 음식을 들고 오고 꽃을 들고 오는 그들의 성의가 짜증이 나 모두 갖다 버리던 그였지만, 이웃의 바베큐 잔치 때에는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하였다.(때마침 그의 생일 날이었다.)
왜 저렇게 꽃을 들고 오나 궁금했는데, 아마 저들은 꽃 흐멍 족으로 보인다.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 사이의 산악 지대엔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데, 그 중 '꽃 흐멍 족'이 있다.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베트남 사람들이 꽃을 많이 좋아한다.)


(작품 속에서 수가 전통 복장으로 딱 한 번 출연하는데 분위기가 비슷한가? 좀 다르긴 하다. 저건 평상복이고 일할 때 입는 옷인지라...)
월터는 자식들과도 부드럽게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신부님께도 으르렁대기 일쑤였지만, 그의 속내에는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그건 한국전 때 참전해서 사람을 죽였고, 혼자 살아 돌아온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젊은 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전시 상황이었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지만, 내 탓이 아니었다는 항변만으로는 사람을 죽였던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해성사'라는 것을 빌미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혹이 없을 리 없었을 텐데도 그는 혼자 괴로워하고 고독하게 살며 자신과 싸우는 방법을 줄곧 고수했다. 아내는 그의 외로운 싸움을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아마 자식들은 그에게 그런 상흔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늘 버럭대기 일쑤인 그의 탓이기도 했고, 뭔가 얻어갈 것 외에는 관심 없는 자식들 탓이기도 했다. 그렇게 뭔가 맞지 않아 늘 삐걱거리던 이 사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경멸해 마지 않던 타 인종 가족 덕분에.


사실, 그는 말은 거칠게 했어도 이웃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곤 하던 사람이었다. 타오와 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갱들에게 희롱당하는 수를 구해주었고, 타오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이끌어주던 월터.
그렇지만 그들의 평화로울 수도 있었던 일상들은 갱과의 마찰로 인해 모조리 깨져버리고 만다. 당장 복수하겠다고 날뛰는 타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수. 월터 역시 분노한다. 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는 너무도 훌륭했다. 뿐인가. 연출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작품은 소소하게 웃으면서 유쾌하고 진지하게 진행되어 갔는데, 갱과의 극단적인 대립 이후 긴장감을 제대로 조성한다. 여전히 농담을 하고 여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 웃음 뒤에 벌어질 미지의 사건을 예상하며 관객들은 영화에 잔뜩 집중하게 된다.
월터가 마지막에 보여준 선택과 헌신, 그리고 복수와 선물에 대해서 관객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나로서는 몹시 마음에 드는 엔딩이었지만, 같이 본 친구는 불편해 했다. 이해한다. 친구는 남겨진 가족은 어쩌냔 말을 했지만... 글쎄, 월터의 피붙이들이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서 어떤 트라우마를 가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그건 월터 자신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기도 했기에 원망도 없었을 테고.
그러나 이웃들은 좀 다를 것이다. 아침에 마주치면 하루종일 재수 없을 것 같은 노인네였지만, 속 사람은 무척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 알 것이다.
몽 부족의 제사장은 그가 존경받지 못하고 외로울 사람이라고 말을 했지만, 인생 마지막의 그는 외롭지도 않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선물해 주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복수가 통쾌했다. 평생을 괴롭혔던 한국전 참전의 그림자를 지고 살았던 사람. 쉽게 죄책감을 벗으려고 하지 않았던 그 사람. 그 사람의 판단이기에 더더욱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아프지만, 타오와 수의 남은 인생에서 그는 결코 '고통'으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깨달을 만큼 그 친구들이 단단하고 현명하다고 믿는다.
영화의 엔딩에서 나오는 노래가 너무 근사했다. 음악 작업을 큰 아들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독이 직접 노래도 불렀던가? 작은 아들이 출연한 것으로 아는데 무슨 역할인지는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주연 작품이라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나저나 감독으로서의 그는 곧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차기 작품은 넬슨 만델라 이야기라고 한다. 모건 프리먼과 멧 데이먼 주연이라고 하는데, 몹시 기대가 되고 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섹시하다'는 것은 나이와는 절대 무관하다. 이 할아버지가 제대로 입증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