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복수

양영순의 천일야화 4 - 하렘의 여왕을 기억하라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세라쟈드가 왕에게 이야기 요법을 시행한 지 어느 새 석달. 이제 왕을 끌어내리려고 모의하던 신하들이 오히려 애를 끓게 된다. 왕은 안팎으로 적으로 둘러싸인 채 진정 자신의 아군이 누구인지 어느 때에 알아차릴까. 

작품 속에는 여러 마신들이 등장한다. 이 마신들의 존재가 기존의 판타지 문학에 등장하는 녀석들인지, 모두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녀석들인지 모르겠다. 이번엔 '역마주눈'이라는 게 등장했는데, 기존에 나왔던 '마주눈'이 마신이 인간에게 붙은 거라면, 이건 역으로 인간이 마신에게 가서 제 몸을 던진 경우다. 마신이 가진 강력한 힘을 손에 얻기 위해서 모험을 한 것이지만 제대로 융합이 되지 않을 경우 벌어진 틈새로 인해 오히려 마신에게 잡아 먹힐 수 있는 위험한 시도다. 여기, 그 위험한 역마주눈을 자처할 만큼 다급한 인생이 하나 있다. 가난한 격투사 주나이드. 그의 이름이다.  

작품 속에는 세금을 왕창 뜯어내는 못된 왕들이 등장하고, 백성들 등쳐 먹는 귀족들이 나오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살을 빨아먹는 고리대금업자들이 나온다. 주나이드의 아버지는 부채로 인해 잡혀갔고, 가족들의 그 빚을 대신 갚느라 죽도록 고생했지만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까지 죽게 되어버린 주나이드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이건 정말, 남일 같지 않아서 많이 슬펐던 부분이다.  

모두 버리고 떠나라고 한 어머니. 이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했건만, 주나이드는 오히려 더 진창을 구르고 만다. 격투장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힘겨운 생을 지탱하느라 술을 마시고, 그리고 그 하렘에서 그녀를 만난다. 이 책에서 감동과 충격을 함께 준 여인, 나쟈리나.  

작품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 트릭 속의 트릭을 자칫 놓칠 수도 있다. 여자 때문에 상처가 많은 임금에게 위험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세라쟈드로서도 승부수였을 것이다. 고민 많은 임금은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을 것인가.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의 그림이 아니지만,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굵은 선 안의 거친 터치 안에서도 섬세하고 미묘한 감동을 준다니 신기할 밖에.  

사랑이 때로 복수가 되기도 할까. 작품을 본다면 가능해 보인다. 픽션이 아니라고 해도 상상이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그래서 좀 아프다. 사랑이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