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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2 - 아무도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평점 :
인간, 특히 여자에 대한 환멸을 갖고서 살인귀가 되어버린 왕. 그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세라쟈드는 이야기 요법을 시도한다.
1권에서 첫날을 무사히 살아넘겼고, 왕은 호기심을 가진 째 두번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게 이 책의 부제 '아무도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다.
지난 이야기에서 상인의 재산을 홀라당 갈취했던 그 마신 사냥꾼들은 임금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다가 오히려 된통 당하고 만다. 눈에 숨겨놓았던 마신의 눈동자를 빼앗기고 답례로 금화 열상자를 받지만, 세금 떼고 나면....;;;;
이 녀석들은 이야기의 매개체일 뿐이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은 저 욕심 사나운 임금이다.
나름대로 호기심 가득 차 있고, 때로 용감해 보일 때도 있지만 적당히 욕심 많고 적당히 속물스런 그런 임금이다. 아, 세금에 환장을 했으니 적당히 속물스럽다고 말하긴 너무 후하다.
암튼, 그 임금에게 어느 날 진상되어 온 '인면어'.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말라버리는 인면어를 보니 호기심이 동한다.
지혜로운 궁중시인 지산과 함께 인면어가 발견된 섬으로 가는 왕 일행.
이곳엔 인어가 살고 있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인어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남자인 것은 상관없지만 미관상....;;;;;
에뷔오네의 초절정 섹시 인어왕이 그립구나!
아무튼, 인어들이 섬에 저주를 걸어놔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고, 임금 일행도 섬에 갇히게 된다. 이 섬에 굴 계열의 마신이 살고 있는데, 몸은 사람이지만 발이 짐승의 발굽 모양으로 되어 있고, 심장을 비켜간 상처는 그를 도리어 더 강하게 부활시켜 검은 머리가 갈색 머리로, 다시 백색 머리가 되면 최강이 되는 마신이었다.
섬에서 만난 한 노파에 의해 억울하게 요녀로 취급당한 아즈릴. 그 아즈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마신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미녀와 야수의 '천일야화' 버전이랄까.(작가의 표현이다.)
마신의 동굴에 들어갈 때 장면인데, 살인 벌이 지키고 있어서 마신의 눈동자를 지닌 임금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임금의 등에 업혀서 같이 들어간 지산. 나름대로 유머의 한 축을 구사하고 있다.
기존의 양영순 작가의 작품과 달리 몹시 진지한 이 작품도 가끔 쉬어갈 곳이 있는데, 맨 앞 동료 작가들의 축전과 맨 뒤 패러디 4컷 만화. 그리고 종종 이런 씬들이 독자로 하여금 한 번씩 웃게 만든다.
아즈릴은 말 못하는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가슴으로 외친 그 말들이, 마신에게는 또렷이 들렸다. 사념의 전달이라니. 얼마나 간절했기에 들렸을까. 추악한 인간들에 의해서 핍박받던 아즈릴. 그 아즈릴에 의해서 생명을 구하고 또 마음의 위로를 얻었던 마신의 사랑. 아즈릴을 살리기 위해서 인간과 인어 앞에 스스로 제물이 되었던 마신. 하지만 그 마신을 만나기 위해서 스스로 인면어가 되어버린 아즈릴. 이들의 만남은 연출이 너무 훌륭해서 더 감동적이었다.
웹툰은 눈이 아파서 모니터가 아닌 책으로만 보겠다고 고집하는 나이지만, 이런 장면은 책으로 보아서 아쉬운 대목이다.
컷이 분할되어 있지만, 만약 모니터였다면 스크롤바를 길게 내려서 마신과 아즈릴이 재회하는 장면과 맞닥뜨렸을 것이다.
저 색채와 또 큰 화면이 아쉽다. 그래도 뭐,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모니터보다 책으로 보는 게 더 좋다.
인간 땅에서는 함께 행복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라고 쓰기엔 뭣한 마신과 아즈릴) 바다 속에선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설마 마신 주제에 바다 속에선 죽는 것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