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건축 바람 든 건축 [제 893 호/2009-03-25]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신문을 보던 건축씨의 푸념을 들은 회사 동료는 궁금하기만 하다. 요즘 신문기사야 다 경제가 어렵다느니… 뭐, 그런 류 일터. 별다른 기사라도 난 걸까? 건축씨가 보고 있는 신문을 흘끔 쳐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경제면이다. 뻔한 경제위기 타령이겠거니 하면서도 자못 궁금한 동료는 시큰둥해하며 묻는다.

“자네가 뭐 경제 전문가라도 된다는 거야? 경제가 어려울 줄 알았다는 표정인 걸?”
그러나 건축씨는 기세등등하다.
“암, 건물높이 지수(erection index)를 알면 경제가 보이는 법이거든.”
“건물 높이와 경제가 관계가 있다는 건가?”

건물높이 지수란 최고층 건물이 지어진 후 주가가 곤두박질친다는 내용이야. 자, 예를 들어 보면 197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이듬해 시카고 시어즈 타워를 지은 직후 미국은 경제공황이 찾아왔고, 1997년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에 세계 최고층 건물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지은 뒤 외환위기를 맞았지. 나는 두바이에 건설되는 부르즈 두바이가 타이페이 101을 제치고 마천루 경쟁을 벌일 때부터 실은 좀 직감을 했어. 그런데 사실 건물 높이지수가 공식적인 경제용어도 아닌데다가, ‘설마 건축물의 높이경쟁이 세계경제를 진짜로 위협할까?’라고 반신반의하고 있었거든.”

건축씨의 말이 끝나자 동료는 속으로 ‘음… 혹시 마천루가 말이야 마치 주사바늘 같잖아. 마구 하늘을 찔러대니 하늘이 노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의 정적을 깨듯, 건축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건물높이지수가 경제와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지. 일단 건물이 높아지면 바람의 속도에 의한 건축물의 외피에서의 열 손실이 대단하니, 그만큼 화석 연료도 많이 사용하여야 하고, 결국 경제뿐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도 유발하게 되지.”

건축씨의 말에 동감이 가는 듯 동료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자넨 고층건물을 지어선 안 된다는 건가?”
“아니지, 고층건물의 바람이 스트레스(stressed)라면 이를 디저트(desserts)로 만들어야 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야 없지 않은가! 바람을 디자인해야지. 바람은 태양 에너지만큼이나 우리에게 주어진 천혜의 에너지원이거든.”

“자네 바레인 세계무역센터를 말하는 건가? 그건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길세.”




“허허, 자네 왜 이렇게 성급한가. 물론 풍차를 이용하자는 말은 맞네만, 우리를 귀찮게 하는 고층건물의 극간풍, 즉 벤츄리효과(Venturi effect)를 역이용하자는 거네. 풍차 모양의 런던아이를 디자인한 막스 바필드(Marks Barfield)라는 건축가는 스카이하우스라는 초고층건물을 설계하면서 건물을 3개 동으로 나누고, 3개 동 사이의 중앙은 사이사이에 공간을 비우는 할로우 코어(hollow core)형으로 설계하였지.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게 된다네.”

1. 건물 사이에는 늘 극간풍(벤츄리 효과)이 존재한다.
2. 그러므로 건물을 여러 동으로 나누어 극간풍을 만들자.
3. 그리고 극간풍이 생기는 중앙에 꽈배기 모양의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바람의 힘을 가두어 역이용하자.




“벤츄리 효과라면 나도 물리학을 공부해서 알 것 같네. 이탈리아 물리학자 벤츄리(Giovanni Battista Venturi, 1746~1822)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좁은 협곡과 같은 곳에서 바람이 불어 나아갈 때 받게 되는 지형의 효과를 말하지. 이러한 현상에 의하여 국지적으로 기압이 내리고, 강풍, 돌풍 등이 나타나게 되고 말이야.”
“그래, 맞아. 벤츄리는 다빈치를 과학자로서 재조명한 최초의 인물이며, 갈릴레오의 필사본을 다량 편집 출판하기도 했지.”
“그렇다면… 아하! 무에 바람 들 듯이 건물에 바람이 든 거군?” 동료는 탄성을 질렀다.

이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인가! 상승 기류를 이용해 건물의 중앙에 꽈배기 모양으로 설치된 풍력 발전기를 돌리게 하는 것이다.

최근 세계는 마천루 경쟁에 혈안이 된 듯 잔뜩 바람이 나있다. 이러한 경쟁은 역시 바람 든 건축물로 해결해야 하나보다. 바람난 건축은 바람 든 건축으로 말이다.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http://scent.ndsl.kr/View.do?type=1&class=200&seq=4088&B4Class=All&onlyBody=FALSE&meid=1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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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3-25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건물이 높이 고층으로 올라가면 건축적 구조해석이 확대된답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건축물은 정역학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초고층 건물의 경우 동역학까지 범위를 확대해야 해요.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아는 건물은 고정불변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풍하중-바람에 의한 무게-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하중역학 범위까지 계산하게 된답니다.) 아마 높은 건물 올라가셨으면 느껴을지도 모르시겠지만. 건물이 약간 흔들흔들 하는 기분이 들껍니다. 63빌딩도 꼭대기에서는 10센티 내외로 건물이 출렁이니까요. 암튼 페이퍼의 내용처럼 중간에 공간을 두어 벤츄리 효과를 노린다면 아마도 고층부분에 적용되는 풍하중도 상대적으로 낮은 치수가 나올 가능성이 크겠죠. 그러나 용적율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건축문화에서는 통용될지는 미지수라 보고 싶습니다.

마노아 2009-03-25 16:40   좋아요 0 | URL
육교 위에 올라가 서 있으면 육교가 출렁거리는 것도 같은 얘기인가요? 모든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미적인 조건과 이야기들이 '대한민국'에서라는 단서를 달면 의미가 없어질 때가 참 많네요. 어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