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알고 있다 - 지구의 비밀을 [제 891 호/2009-03-20]


오랜만에 성재네 식구들은 온 가족이 온천여행을 갔다. 그런데 뜨거운 물이 싫다고 목욕탕 밖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는 성재한테 아빠는 어서 탕에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이구구구~~ 시원하다. 아하~~ 온몸이 사르르 녹는구나. 성재야, 너도 어서 들어와라. 물이 정말 좋단다. 하나도 안 뜨거워.”

성재는 마지 못해 살짝 발을 담그는 듯하더니 냉큼 발을 빼고는 투덜거린다.
“아빠는 거짓말쟁이! 이렇게 뜨거운 물이 어떻게 안 뜨겁다는 거예요! 난 탕에 안 들어갈 거예요!”

한번 마음 정하면 웬만하면 지지 않으려고 하는 성재의 고집을 알기에 아빠는 성재가 좋아하는 과학이야기로 성재를 탕 속으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성재야, 그건 네가 살짝 물 표면에만 발을 담가서 그래. 이 탕 속 바닥에 있는 물은 정말 뜨겁지 않아.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 물은 뜨거울수록 가볍고 차가울수록 무겁단다. 왜냐하면 물은 뜨거워지면 팽창하고 차가워지면 수축하기 때문이지.”
“아! 맞다. 저도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물뿐만 아니라 공기나 쇠도 온도에 따라서 팽창하고 수축한다는 것을 봤었어요. 그래서 철도레일을 보면 중간 중간 끊어 놓잖아요. 이것은 여름에 온도가 올라가서 기찻길이 팽창했을 때 휘어지지 않게 하려고 끊어 놓은 것이지요?”

“그래. 맞단다. 우리 성재 제법인걸. 만약에 기찻길이 끊어져 있지 않으면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레일은 길이가 늘어나야 하는데 늘어날 공간이 없으니 옆으로 휘어버리게 되지. 그러면, 휘어진 철로를 지나는 기차가 탈선돼서 큰 사고가 날 수 있단다. 철만 온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게 아니야. 공기도 온도에 따라서 늘어나고 줄어든단다. 하늘에 떠다니는 열기구 알지? 이 기구를 하늘로 올릴 때는 기구풍선에 뜨거운 공기를 집어넣는단다. 그러면, 풍선 안에 있는 뜨거운 공기는 풍선 밖에 있는 차가운 공기보다 더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게 되지. 목욕탕의 물도 마찬가지야.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이면 뜨거운 물은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은 무거워서 아래로 가라앉는 거야.”

“아~ 그렇구나. 모든 물질이 온도에 따라서 늘어나거나 줄어드네요.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예요.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물은 싫어요. 저 안 들어갈래요.”
“음… 성재야, 그렇다면 우리 내기할까? 사실 아빠가 한 말 중에 거짓말이 하나 있었어. 그 거짓말이 무엇인지 맞추면 탕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지만, 못 맞추면 들어오는 거다. 지금부터 1분 동안에 맞추는 거야. 시작!”
“네?! 거짓말이 있었다고요…. 이상하다… 전부 맞는데… 예전에 과학책에서 봤는데….”

“자! 1분 지났어. 아빠가 한 거짓말은 차가운 물이 뜨거운 물보다 무겁다는 거야.”
“아빠, 무슨 말이에요! 좀 전에는 찬물이 무겁다면서요~ 그리고 책에도 차가운 물이….”
“잠깐잠깐, 아빠 말 좀 들어보렴. 응. 일반적으로 물은 온도가 올라가면 팽창하고 온도가 떨어지면 수축한단다. 그런데 물은 참으로 신기한 성질을 갖고 있어. 온도가 떨어질수록 물은 점점 수축하지만 섭씨 0도일 때까지 계속 수축한 다음에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섭씨 4도일 때까지는 수축하지만 섭씨 4도보다 차가워지면 다시 부피가 팽창하고 얼음이 된단다. 그러니까, 뜨거운 물이 항상 차가운 물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란다. 예를 들어서, 섭씨 4도의 물이 섭씨 2도의 물보다 더 무거운 것이지.”

“피~ 그게 뭐예요. 그건 아주 특별한 예외잖아요. 일반적으로 물이 차가워질수록 수축해서 차가운 물이 더 무거운 것은 맞잖아요. 엉터리~”
“성재야. 아니란다. 물이 섭씨 4도에서 가장 무거워지고 온도가 더 내려가면 더 팽창한다는 성질은 아주 중요한 성질이고 물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란다. 성재야~ 김연아 누나 좋아하지? 김연아 누나가 빙판 위에서 멋진 피겨스케이팅을 보여주는 것도 물의 특별한 성질 덕분이란다. 만약에 물이 차가워질수록 무거워지기만 한다면, 겨울일 때 연못에는 점점 차가워지는 물은 아래로 가라앉고 덜 차가운 물이 위로 뜨겠지. 그러면 더욱 추워지면 얼음은 연못 바닥부터 생길 거야. 얼음이 바닥에 있고 그 귀에 물이 있으니 피겨스케이팅은 할 수 없겠지. 그리고 얼음이 물 위에서 얼지 않기 때문에 지난 주말에 아빠랑 같이 했던 얼음을 뚫고 빙어를 잡는 겨울 낚시도 할 수 없단다.”

“아, 그렇구나.”
“지금 우리 인류가 지구 상에 살아 있는 것도 물이 섭씨 4도 이하로 차가워질 때 오히려 더 가벼워져서 물 위로 뜨기 때문이란다. 만약에 섭씨 4도 이하로 차가워질 때 더 무거워져서 물아래로 가라앉는다면, 차가운 바람에 의해서 물 표면의 온도가 떨어지고 차가워진 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뜨거운 물은 다시 차가운 바람에 의해서 온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 돼서 결국은 연못의 물이 모두 얼어버릴 거야.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도 봄이 되면 물고기들이 다시 나타나잖아. 이것은 물고기들이 얼음 밑의 물에서 살아있기 때문인데, 만약에 얼음이 바닥부터 언다면 물고기는 다 죽을 거야. 이와 비슷한 게 지구의 생명체에 적용된단다. 빙하시대 들어봤지? 빙하시대처럼 엄청나게 추웠을 때는 바다 위도 다 얼었을까? 아니란다. 얼음 밑에는 물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고대미생물이 살아남아서 빙하기가 끝나도 다시 살아남고 진화를 거듭했던 것인데, 만약에 얼음이 바닥부터 언다면 빙하기에도 지구 전체가 바닷속까지 얼음 덩어리였을 테고 고대미생물이 다 얼어 죽고 현재의 인류로까지 진화하지 못했을 거야.”

“와~ 참 다행이네요.”
“성재야, 그렇다고 이러한 성질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이번 겨울에 파이프가 터져서 추위에 고생한 사람들 많다는 얘기 들었지? 겨울철 파이프가 터지는 것도 파이트가 추운 날씨를 못 견디기 때문이 아니고 이 파이프 속을 흐르는 물 때문이란다. 날씨가 급격히 떨어지면 파이프 속에 있던 물이 얼어버리는데. 문제는 물이 얼음으로 바뀌면서 팽창한다는 점이지. 한정된 공간인 파이프 속에서 물이 팽창해서 결국 파이프를 터뜨리게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파이프 동파를 막기 위해서는 아예 쓰지 않는 파이프의 물은 다 빼버리거나 파이프 주위에 천 등으로 감싸서 따뜻하게 만들어서 얼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거란다. 결국 자연의 성질 하나하나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 질 수도 있는 거란다.”

파이프를 터뜨리는 물의 힘도 놀랍지만, 물의 이러한 성질이 없었다면 지구 생태계가 바뀔 수 있었다니… 성재는 조용히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물은 뜨거웠다.

‘앗! 뜨거워. 목욕탕 물이 뜨겁지 않다고 한 게 아빠의 거짓말 같은데~’

글 : 유병용 과학칼럼니스트(‘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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