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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정원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조선경 글 그림 / 보림 / 2005년 6월
평점 :
외국 아저씨가 주인공이고 실제 모델도 외국인이어서 외국 작품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한국 작가가 글 그림을 모두 담당했다.
모스 아저씨는 지하철 역에서 청소부로 일하신다. 어느 날, 승강장에 서있는 사람들이 악취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 냄새는 지하철이 들어올 때면 더하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사람들의 말이 가슴에 남았던 아저씨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냄새의 원인을 찾아본다.
다음날 일찍 집을 나선 아저씨는 터널 안 바닥에 고인 물을 훔쳐 내고 벽에 덕지덕지 않은 검은 때와 곰팡이를 벗겨 냈다. 물비누를 풀어 벽을 닦자, 까만 비누 거품 사이로 파란 벽이 드러났다.
아저씨는 날마다 조금씩 시간을 내서 터널 안을 청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는 터널 벽에서 땅 위로 통하는 환기구를 발견했다. 환기구에 가득 찬 쓰레기를 치워내자 은은한 달빛과 서늘한 밤바람이 밀려들었다. 이때, 아저씨의 머릿 속에 반짝 하고 떠오른 좋은 생각 하나!
환기구 안쪽에 흙을 쌓아두고 화분에 심겨져 있던 작은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작은 나무 혼자는 외로울까 봐 푸른 넝쿨도 함께 심었다. 어둡고 차가운 시멘트 터널 안에 아저씨만의 아담한 정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바깥과 공기가 통하는 환기구가 없이 터널 안에 혼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지만, 지금 이 달빛 아래 분위기는 아저씨만의 멋진 휴식공간이자 도서관이지 않은가. 환기구 위로 지상의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것은 소음들이지만, 듣기에 따라서 마음 편해지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없는 아저씨의 휴식 시간이 몹시 편안해 보인다.
아저씨는 그 후로도 터널을 계속 청소했고, 심어놓은 나무에 부지런히 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고약한 냄새가 아닌 풋풋한 냄새를 느끼며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 있다.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 같고, 아저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한 사람의 노력과 희생, 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의 놀라운 아이디는 또 다른 빛을 냈다.
작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땅 위 환기구 밖으로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어린 아이가 먼저 발견했지만 앞만 보고 바삐 가는 엄마는 아이의 팔을 당길 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이제 그 거리의 명물이 되고 만다.
메스컴을 장식하며 떠들썩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식었고, 그것과 상관 없이 나무는 계속해서 그 가지를 더 뻗어낸다. 모스 아저씨의 사랑과 정성을 받으며 키를 계속 키우는 중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봄, 누군가 딱딱한 바닥을 걷어내고 다른 나무들을 더 심었다. 이제 도심 한 가운데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멋진 숲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직한 모스 아저씨는 여전히 저벅저벅 걸어가 지하철 역을 청소하고, 또 터널 안을 청소하고, 그리고 나무에게 물을 준다. 여전히.
제목이 '지하' 정원이다. 표지의 색감도 어둡고, 제목도 음습한지라 웬지 쾌쾌한 느낌이고 밝은 기분이 들지 않건만, 책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 멋진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단어에서 오는 선입견에 괜히 피하면 손해볼 일이다. 그림 상의 구도만 보면서 햇볕을 가리네, 지나다니기 힘드네... 이런 현실적인 불만은 접어두자. ^^
지은이의 소개에 의하면 실제 모델을 1990년 뉴욕에서 그림 공부하던 시절에 만났다고 한다. 맨해튼과 호보켄 사이 홀랜드 지하철 터널을 청소하는 그의 집에는 책장 가득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미술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그가 800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틈나는 대로 작곡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늦은 밤 고된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도, 일 외에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어 가는 청소부 모스의 모습에 작가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환기구를 뚫고 나온 나무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졌겠지만, 실제 인물 모스 씨도 무척이나 근사한 삶을 살고 계셨다. 아마 그 분은 마음이 무척 부자였던 분이 아닐까. 게다가 예술가이기까지.
어느 님이 이 책을 소개한 글을 보고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그 님이 누구인지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르지만,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어서 무척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