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천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민족이다. 몇 천 년 전 고인돌에도 별자리가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또 올해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지 4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UN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International Year of Astronomy)’다. 아울러 고려시대 천문 관측 기관인 서운관(書雲觀)이 설립된 지 7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서운관은 1308년 고려 충선왕 때 설립된 후, 조선말까지 무려 600년 동안 일식, 월식, 태양의 흑점, 별똥, 혜성, 초신성(超新星) 등 천문 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한 관청이다.
하지만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근대천문학은 역시, 근대과학을 태동시킨 서양에서 시작했다. 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는 데 사용하면서, 천문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을 하게 된다. 그는 달 표면의 운석 구덩이(Craters), 금성과 같은 내행성의 위상 변화, 목성 주변을 공전하는 4대 위성, 귀가 달린 듯하다.라는 말로 표현했던 토성의 고리 등을 발견했고, 마침내 천동설을 뒤집게 된 생각까지 해내게 됐다.
천문학은 망원경의 진보 그리고 꾸준한 관측과 해석에 의해 이뤄진다. 갈릴레이가 처음 사용했던 망원경은 가시광선 영역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광학망원경이었다. 먼 곳에 있는 물체가 내는 빛을 받아들여 상을 맺히게 하는 대물렌즈(볼록렌즈)와 이 상을 확대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접안렌즈(오목렌즈)로 이루어진 광학망원경은 렌즈가 클수록 성능이 높아진다. 아주 미약한 빛도 렌즈에 모을 수 있는 집광력과 멀리 있는 대상을 잘 확대해 가까이 붙어 있는 두 물체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인 분해능이 모두 렌즈의 크기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광학망원경은 통상 빛과 대기 간섭을 피하기 위해 산 정상 부근에 설치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지름 5~10m에 이르는 망원경을 하와이 칠레 등 해외에서 설치해 놓고 운용하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해도 하와이 스바루천문대에 지름 8.2m짜리 광학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있다.
별이나 우주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는 전파망원경이 주로 사용된다. 천체에서 날아오는 전파의 강도를 기록하고 분석하면 우주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멀리서 오는 전파는 아주 미약한데, 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전파망원경의 규모도 커져야 한다. 전파 천문대는 일반 광학천문대와는 달리 전자기파 차단을 위해 계곡 안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 설치된 직경 100m짜리 가동식 전파망원경은 무려 80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고정식 전파망원경으로 가장 큰 것은 아레시보천문대에 설치된 것으로 직경 305m에 달한다.
이런 첨단장비들의 도움으로 우주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풀려가고 있다. 태양계 행성들의 특성에서부터, 우주의 모양 그리고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태양계 밖에서 행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외계에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한국 천문학자들에 의한 좋은 연구결과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주로 해외연구소나 국제 협력연구를 통해서인데, 최근에는 국내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천문연구원 이재우·김승리 박사와 충북대 김천휘 교수 연구팀은 처녀자리 방향으로 59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쌍성계(HW Vir)에서 그 둘레를 공전하는 2개의 외계행성을 발견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백산천문대와 충북대 망원경으로 2000년부터 9년 동안 관측해 얻은 영상 데이터에서 두 별만 있을 때와는 다른 미세한 별빛 주기 변이를 찾아낸 것이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현대 천문학계의 필수장비들은 세계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광학망원경으로는 소백산과 보현산에 각각 지름 61㎝, 1.8m짜리를 보유하고 있다. 또 한국천문연구원 산하의 대덕전파천문대에서 1986년부터 지름 14m의 단일 전파망원경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내에도 지름 6m의 전파망원경이 설치되어 2002년부터 연구에 이용되고 있는 정도다.
한국 천문학은 올해를 기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전망이다. 우선 직경 25m 크기 대형 광학망원경을 개발하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Giant Magellan Telescope)` 국제프로젝트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2003년부터 추진된 GMT는 총 7억 4000만 달러를 들여, 8.4m 크기의 반사경 7장을 붙여 만든 직경 25m급 망원경을 2018년까지 칠레 라스 캄파나스 지역에 설치하는 프로젝트이다.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10배 높은 해상도가 기대되는 이 망원경은 약 130억 광년 밖의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데 미국 카네기 천문대, 하버드 대학, 스미소니언 국립천문대, 애리조나 대학, 텍사스 오스틴 대학, 텍사스 A&M 대학이 지분 80%를 갖고 있다. 여기에 호주와 우리나라가 각각 10% 건설비 지분을 갖고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GMT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망원경 관측시간 중 10%를 독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Korean VLBI Network) 사업도 한국 천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는 초장거리 전파간섭기술을 이용해 우주를 관측하는 프로젝트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천체의 정확한 위치와 특성, 화상 등을 얻는 것이 바로 전파간섭기술인데, 각각의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전파신호를 컴퓨터를 이용하여 간섭시켜 천체의 위치와 특성, 화상을 얻는다. 지난해 말 이미 서울의 연세대학교, 울산의 울산대학교, 제주의 탐라대학교 캠퍼스 안에 각각 21m 크기 전파망원경이 구축됐는데, 이들 망원경이 통합 운영되면 지름 500㎞에 이르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의 성능을 구현하게 된다. KVN이 성공적으로 구현되어 2011년 일본관측망과 연결되면, 직경 2,500km 급의 동아시아 전파관측망이 구축되고 이렇게 될 경우 천체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우주는 한마디로 끝이 없는 광대한 공간이다. 지금까지 관측한 우주의 모습을 다 합하더라도 극히 일부만 본 것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첨단 망원경이 기본이다. 우리나라도 올해를 기점으로 한 단계 높은 망원경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만큼, 한국 천문학의 성과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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