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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니아 이야기 4
토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칼바니아의 젊고 귀여운 여왕 타니아. 수많은 외국 사절들과 유명 인사들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회견을 신청한다. 그녀는 귀부인이고, 또 최고 지위의 여자인 여왕. 귀부인의 권장 덕목인 '우아함'을 강요당하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하루종일 굶었던 그녀는 이웃의 파마 왕국 제1 왕위 계승자 앞에서 과식을 하고 만다. 늙은 대신들은 쫑알쫑알 잔소리를 해대고, 타니아는 심통이 나버렸다. 게다가 기껏 얻은 하루의 휴가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오찬으로 다시 바뀌고 마니 화가 날 수밖에. 그래도 그녀는 프로인지라 미리 음식도 먹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야외에 차려진 테이블. 선선한 바람. 적당히 배는 부르고, 모든 게 만족스럽다. 가만히 눈을 감았던 그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오, 갓! 이웃 나라 왕자님 앞에서 여왕 폐하가 졸아버렸으니 쫑알쫑알 대신들이 패닉 상태가 되는 것은 당연! 그리하여 3차례까지 왕자님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데....
왕자님을 모시는 신하들은 여왕 타니아가 교양이 없다고, 예의가 없다고 수근대지만, 왕자는 그녀에게서 이전에 보지 못한 매력, 전에 겪어보지 못한 소중한 감정들을 느낀다. 그래서 한 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국경을 넘어 칼바니아로 가서 여왕 앞에서 쓰러진다. 잠옷은 온통 누더기가 되어 있고 얼굴은 모두 상처 투성이. 게다가 타니아도 잠옷 차림. '실례'로 치면 누구도 견주지 못할 대 실례를 범한 것. 그렇게 쌤쌤을 만들어 놓은 이 매력적인 왕자가, 타니아에게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정말 유쾌한 이야기의 진행이다. '데이브'였던가? 대통령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대통령 대역을 하는 영화. 대통령은 혼수상태고, 이 사람은 대역이 아니라 진짜 '대통령' 역할을 감당해낸다. 모두가 '안 된다'고 못 박을 때 그는 단순하게 기본만 짚어가면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처음엔 반대만 하던 각료들이 점차 그의 의견에 동조해가기 시작한다.
정치란 대단히 복잡한 것이지만, 그 복잡함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욕심'과 '계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태생부터 선한 존재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공익을 위해서, '근본'을 생각하며 정치를 한다면, 이런 저런 계산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그 정치도 복잡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되지 않을까. 政治가 아닌 正治로 말이다.
그 밖에 에큐의 에피스도, 더글라스의 에피소드도 모두 좋았지만, 왕족들의 이름을 겸해서 쓸 수 없는 제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주었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살았던 여관장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이름'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게 되면서.
한참 책정리 중이었던 나는, 이 책을 후다닥 읽고 팔아버릴 생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소장본이란 생각이 진하게 든다. 늘 심각하기만 한 세상에서, 이렇게 유쾌하면서 가볍지 않은. 진지하면서도 예쁜 이야기가 필요한 듯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