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월 둘째 주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사전 정보는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독립 영화라는 것은 알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인 줄은 몰랐고, '워낭'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평일 낮 시간이었는데도 극장 안은 꽉 찼고, 연세 있으신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이 영화 덕에 몇 십 년만에 극장을 찾은 어머니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런 경우였나보다.  

영화는 짧다. 1시간 20분 정도 분량. 등장인물은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외, 그들의 자녀가 아주 잠깐 나오고, 그리고 늙은 소가 한 마리 나온다.(젊은 소도 나오지만 별로 티가 안 난다...;;;;) 딱히 정해진 대본도 없이 그들의 일상 생활만 보여주고 있는 터라 지루할 것만 같았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일단 할머니의 투덜거림이 너무 웃겼고(그러나 나름 슬픈 투덜거림이었고)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연대감은 내내 짠하게 마음을 울렸다. 

그런데,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하신 까닭인지, 아니면 극장을 처음 오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 안을 채운 무수한 아주머니들이, 영화를 제 집 안방에서 보듯이 관람을 하시는 거다. 웃길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거야 무슨 흠이 되겠는가. 근데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모든 감탄사가 속으로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다 말이 되어서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이런 추임새.  

"아이고, 이를 어째."
"저저저저 저것 좀 봐!" 
"아유, 불쌍도 하지!" 

등등등 

내 옆자리에 앉은 어떤 여인은 그런 아주머니들의 커다란 목소리에 엄청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놓고 화내고 대놓고 짜증을 부렸는데, 난 그 여인네가 더 재섭었다. 80분 밖에 안 되는 저 상영 시간 동안 전화를 두 통이나 받은 것이다. 전화를 받은 것도 웃겼고, 받아서 '극장이야, 내가 다시 걸게!'정도의 짧은 대사만 남기고 끊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는 거다.  

"어, 극장이야. 응, 워낭소리. 재밌다고 하길래. 근데 뒤에서 엄청 떠든다~" 

이러면서 상대방이랑 통화를 하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뒷줄 아주머니들 시끄럽다고 막 욕하고. 뭐 이런 네가지 없는 여인네가 다 있냐고 마구 노려봤지만, 아랑곳 없이 같이 온 자기 친구한테 계속 욕하더라. 어이 없어라..;;;; 

암튼, 극장 내의 상황은 그랬고,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지는 연세가 거의80이다. 영화 찍을 때 그랬으니까 지금은 아마 넘으셨을 거다. 그리고 그들이 부리는 일소는 나이가 무려 40살이다. 소의 수명이 보통 15년이라고 하니, 두 배 이상을 산 셈이다. 원래 수명이 15년이 아니라, 지구 환경이 나빠서 15년 만에 죽는 것인지, 아지면 영화 속 소가 특별하게 오래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잘 걷지도 못하셨는데, 평생 논일을 해서 자식들을 다 공부시켰고(8남매였던가?), 지금도 저 소와 함께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을 하신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다리뿐 아니라 가는 귀도 먹었고, 늘상 두통으로 힘들어 하신다. 그렇게 온 몸은 병치레로 고생인데도 소와 함께 하는 일상을 절대 멈추지 않으신다. 병원에서는 이제 그만 쉬어야 한다고 말을 해도 아랑곳 없으신다. 소도 마찬가지다. 수의사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고, 소도 너무 지친 내색이 역력한데 그럼에도 수레에 할아버지를 싣고 느릿느릿 날마다 논과 집을 오간다.   

그 와중에 잔소리로 늙어가시는 건 오로지 할머니. 소가 마누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저 소 때문에 내 팔자가 이렇다고 끊임없이 투덜대시는 할머니.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던지는 말투와 눈흘김은 관객을 시도 때도 없이 웃게 만들지만, 제3자인 우리야 재밌어도 할머니의 진심은 정말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몇 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어찌 정이 안 들었겠는가. 자식같은 애정을 갖고 있겠지만, 당신 삶이 힘들고, 당신 육신이 고단하고, 그래서 당신의 시간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그러니, 할아버지에겐 반려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 소가, 할머니에겐 애증의 대상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old partner'인데, 할아버지의 오랜 파트너 소. 그런데, 할아버지의 진짜 파트너는 할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소를 더 사랑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내내 도시에서만 산 나로서는, 느릿한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의 일상이 신기할 따름이고, 친자연적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 대단해 보이고, 이렇게 향수와 추억을(비록 나의 것은 아니지만) 자극하는 영화가 인기를 끌어서 더불어 기쁠 뿐이지만, 실제로 저런 삶을 살 자신도 없고, 저 비슷하게도 닮아갈 재간이 없다. 소가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안타까운 만큼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안쓰럽고, 120만원에 소를 사겠다고 하니 500만원은 줘야 팔 수 있다고 우기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제 송아지값은 무려 2만원 대로 떨어진 세상인데 이를 어쩌누...하는 생각 뿐이었다.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이런 삶이 올바른 삶이야~라고 권장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건 전혀 아니다. 그저 이런 삶도 아직은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그 속에서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과 생각의 주머니 속에서 나름의 감상을 가질 뿐이다.  

다만, 작품의 말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겨울 내내 쓰실 나무 짐을 다 날라낸 소의 우직한 충심에는 똑같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실제로 저 소는 1년이 아니라 2년을 그 후 더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비가 많이 늘어났다고...;;; 

그림 속에서 피리부는 목동이 소 등에 올라타서 가락을 뽑는 장면을 보면 신선이 사는 세상처럼 신비로운 이질감을 느끼겠고, '황소와 도깨비', '모기와 황소' 같은 동화책을 보면 또 소가 반갑고 그런데, 실제로 시골 땅을 밟아서면 소똥 냄새부터 코를 자극하는 그런 현실. 스크린과 현실의 괴리감은 참으로 크다고 다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우유를 아주 사랑하지만, 우유가 몸에 안 좋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어릴 적에 '완전 식품'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던 그 우유가 말이다. 그건 소를 키우는 환경과 사료의 변화 때문이 아닐까. 예전에는 소 팔아서 자식 대학 공부를 시켰지만, 이젠 소 가지고는 대학 문턱을 넘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비교 대상으로서의 소의 위상 격하도 느껴진다.(사실은 물가, 교육비의 상승이지만) 

엄니가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보고 싶다고 하신다. 난 이미 보았고, 언니들은 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영화가 좀 길면 같이 극장 가서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나오기라도 하겠는데, 타이밍이 좀처럼 안 맞을 것 같고, 혼자 보고 오시라고 하기엔 거시기 하고, 결론은 내가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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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2-27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리뷰를 읽고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요.
영화 워낭소리는 꼭 봐야겠어요.^^

마노아 2009-02-27 12:41   좋아요 0 | URL
dvd로 나오면 미국에서도 바로 볼 수 있는 거지요?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보면 더 감회가 깊을 것 같아요. ^^

후애(厚愛) 2009-02-27 14:19   좋아요 0 | URL
DVD를 구입하기 전에 꼭 지역코드를 확인을 해야 된답니다. 지역코드가 3이라면 미국에서 못 보고, 지역코드가 1, ALL로 되어 있으면 미국에서 볼 수가 있어요. 자막이 영어로 나오면 울랑과 같이 보면 되는데 자막이 없으면 혼자서 봐야지요.^^ 영화 워낭소리는 꼭 지역코드가 ALL로 나오면 좋겠어요.*^^*

마노아 2009-02-27 14:42   좋아요 0 | URL
아핫, 코드도 신경써야 하는군요. all로 나오기를 기대해야겠네요.
한국말의 사투리라든가 억양, 이런 것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대사가 워낙 없으니까 영어 자막 없더라도 설명해 주며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머니, 너무 웃겨요..ㅜ.ㅜ

순오기 2009-03-0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들은 9남매였어요~~ 나는 촌사람이라서 여러번 눈물났어요.
우리가 소 키우고 꼴 베어본 적은 없지만 내 또래 동무들은 다 그렇게 자랐거든요.ㅜㅜ
할아버지와 소, 정말 올드 파트너였죠.

순오기 2009-03-01 12:11   좋아요 0 | URL
내 앞에 앉은 아줌마 둘이서 영화 진행되는대로 지껄이면서 보길래, 한마디로 제압했어요.
얼마큼은 봐 주지만 매너없으면 간과 못하는 순오기~~ 찔끔해서 입 다물고 보더군요.ㅋㅋ

마노아 2009-03-01 15:5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엄마한테 자식이 모두 몇 명이냐고 물었어요. 몇 주 지났다고 고새 까먹은 거 있죠. ^^;;
저는 마지막 나뭇짐에서만 눈물났어요. 어무이는 전혀 눈물 안 났다고 하셔서 좀 당황..;;;;
전 뒷줄 아주머니들보다 옆자리 그 여자한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소심해서 또 못 하고...ㅜ.ㅜ

책벌레 2009-03-04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워낭소리가 들리는 것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에들 모여살지만 마음은 항상 자연을 그리워하듯
어릴때 방학때면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도 두어시간을 걸어가야했던 그리운 외가댁이 생각나네요

마노아 2009-03-04 09:21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더 각별할 것 같아요. 지금은 어릴 때 뛰놀던 자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지만, 좀 더 지나면 그 마저 도시에서의 기억으로 다 채울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아 걱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