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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ㅣ I LOVE 그림책
캐드린 브라운 그림, 신시아 라일런트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1월
평점 :
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낡은 자가용에게 '베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헌 의자에게는 '프레드'라는 이름을, 밤마다 누워 자는 침대에게는 '로잰느'라고, 그리고 오래오래 살아온 집에게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매일 아침 할머니는 로잰느에서 일어나, 프레드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는, 베치를 몰고서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늘 누군가로부터 올 편지를 기다렸지만 세금 고지서 밖에 날아오지 않는다.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외로운 노인이 되는 게 싫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친구가 없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였다. 할머니가 이름 짓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하지만 할머니에게도 규칙이 있었다. 할머니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사라질, 죽어버릴, 또 다시 감당해야 할 이별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녹이 슨 출입문에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씩씩한 척 살지만 사실은 많이 외로운 할머니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온다.
순해 보이는 갈색 강아지 한 마리. 강아지는 배가 고파 보였다. 할머니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내주었지만 집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따. 당연히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할머니의 핑계는 구구절절하다. 베치가 내뿜는 연기가 해로울 것 같고, 프레드는 좀처럼 자기 위에 강아지를 앉히려 들지 않을 것이고, 로잰느는 강아지와 할머니가 함께 눕기엔 너무 비좁을 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프랭클린은 강아지 털 날리는 것을 못 견뎌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실 이유는 한 가지다. 강아지가 할머니보다 오래 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을 준다는 건 정을 준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정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두고서 훌쩍 떠나버릴 존재를 또 다시 곁에 둔다는 것을 할머니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날마다 찾아오지만 먹을 것만 챙겨주고 곁을 내주지 않는 할머니. 그 사이 할머니 집에는 새 옷장이 '빌'이란 이름을 달고 정착했고, 새로 산 외바퀴는 '프랜신'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정원 한 귀퉁이에 새로 들여놓은 돼지 조각상도 '버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할머니로부터 정성껏 먹이를 챙겨받는 강아지만은 이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어김 없이 찾아오던 순해 보이는 갈색 강아지. 그런데, 어느 날 이 강아지가 소식이 없다.
할머니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슬퍼지고 말았다. 이름을 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을 준 존재. 그 존재가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그건 이름을 주고서 헤어지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었다.
떠돌이 개를 잡아들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찾고 있는 개에게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어떤 개를 찾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할머니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에 발목이 잡히는 순간!
결국, 할머니는 직접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개 사육사를 찾아가 '우리 개'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할머니.
사육사가 개의 이름을 물었다. 할머니는 생각한다.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 사랑스런 친구들의 이름이 그 순간에 도움이 되어주고 말았다. 할머니는 자신있게 말했다.
"우리 개 이름은 '러키'랍니다!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할머니가 타고 온 베키 때문이었을까. 순둥이 개는 자신을 향하여 부르는 '러키'라는 이름에 바로 반응하여 달려왔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일까.
러키와 함께 돌아온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했다. 베치가 내뿜는 연기가 러키를 해치지 않았고, 프레드도 기꺼이 자기 위에 러키가 앉는 것을 허락했고, 프랭클린은 러키의 털이 날리는 것도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잰느의 따뜻한 품은 ,매일 밤 러키와 할머니가 함께 눕고도 남을 만큼 넓고도 넉넉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자그마했던 러키가 이제는 저렇게 커버렸다. 할머니는 그만큼 더 주름진 얼굴을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나이 먹어감을 할머니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했던가. 사랑이 끝날 것을, 이별의 순간을 두려워하여 시작도 않는다면, 그건 사랑의 끝보다 더 큰 비극이 아니던가. 마음껏 사랑하자. 마음껏 이름을 불러주자. 이미 충분히 '나의 의미'가 되어버린 그 존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