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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작이 있는 영화는, 대개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곤 했는데, 간혹 순서가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향수는 책을 한참 읽던 와중에, 마지막 분량을 약간 남겨둔 채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장 폭발력을 지닌 엔딩만 모른 채 영화를 봤던 것이다.
원작을 먼저 읽을 경우, 영화는 대개 원작에 못 미치는 감상을 낳곤 했었다. 영화 자체가 함량미달일 경우도 있지만, 원작의 무게가 너무 커서 감히 견주기 어려울 경우도 있었다. 반면,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접할 때에 영화의 재미가 너무 커서 원작이 지루하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내 경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랬고, '반지의 제왕'이 그랬고, 꼭 우열을 가리긴 하지만 영상의 강렬함이 인상깊었던 '타짜'도 그랬다.
그래서 이 작품은, 원작을 다 본 것도 아닌, 안 본 것도 아닌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뭐가 더 좋았더라...라는 말은 하기가 어렵다. 원작이 워낙 훌륭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난 영화도 엄청 재밌게 보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길게 설명해 놓은 분량들은 과감한 생략을 달고, 대신 영상과 음향이 결합되어 짧고 굵게 보여주면서 영화는 뒤로 흘러간다.
주인공이 너무 잘 생겨서 맛이 안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잘 이해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잘 생겨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원작에서도 때 빼고 광 냈더니 귀공자 같아 보였더라...라는 표현이 나왔으니까.
암튼... 이 작품이 '향기'에 관련된 작품인지라, 화면을 통해서 향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광기를 어찌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묘하게도 그 분위기가 잘 설명되었다. 어떤 부분들은 영상이 결합된 영화 쪽이 원작보다 더 실감나기도 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무래도 엔딩일 듯 싶다. 주인공이 원하던 향수를 드디어 만들었고, 세상을 지배할 힘을 마침내 가졌음에도, 결국에 인정하고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그 허무함과 직면하던 순간. 그가 흘렸던 눈물, 그의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가던 과거의 모습들이 그 허망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준 것이다. 난 오히려 이 부분은 책보다 영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영화 시작할 때 시장의 그 분주함과 지저분한 거리, 펄떡거리는 생선, 갓 태어난 아가가 냄새를 통해 세상을 향한 눈을 뜰 때의 강렬했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고, 영화 내내 꾸부정한 어깨를 하고 뭔가 주눅들어 있지만 또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열연이 자꾸 떠오른다.
원했던 것은 하나였지만, 그 하나를 갖기 위해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나 양심도 모두 저버렸던 한 사나이. 원했던 것을 마침내 가졌지만,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는 더 이상 생에 미련을 가질 수 없었다. 온전히 그가 만들어낸 그 향기에 자신을 내던져 향으로 산화하는 것... 그의 끝은 '향'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