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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비닐우산 ㅣ 우리시 그림책 6
윤동재 지음, 김재홍 그림 / 창비 / 2005년 8월
평점 :
김재홍 작가의 그림에선 언제나 '질감'이 느껴진다. 유화를 그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책장을 꼭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 붓이 지나간 흔적이 느껴질 것만 같아서. 그 기분에 취해 첫장을 넘기고 난 뒤의 그림과 그 뒷장을 찍어보았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고, 창가 한 켠에 비닐 우산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창가를 장식한 노란 꽃이 예쁘게 눈을 사로잡는다. 저 우산을 집어들고 나가서 영이가 비닐 우산을 펴나 보다.
왼쪽 위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보이던 영이가 다음 큰 컷에서 뚜렷한 윤곽으로 잡혀 있다. 컷은 분할되어 있지만 장면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님의 구도 잡는 센스가 훌륭하다.
학교 가는 그 길목에서 영이는 마주친다. 바로 이 사람을...
비를 맞으며 시멘트 담벼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거지 할아버지.
그 옆에 같이 잠들어 있는 쭈그러진 깡통엔 빗물이 가득 고여 촐촐 넘치고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 몇이 할아버지 어깨를 툭 건드려 보고 지나가고, 문방구 아주머니는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욕을 하신다.
비는 계속해서 주룩주룩 더 거세게 내리고, 할아버지는 그 비를 계속 맞고 계신다. 영이는 할아버지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침 자습을 마친 영이는 결국 할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비닐 우산을 든 채로.
이제부터는 할아버지의 시선이다. 온통 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른 빛이 아른거리며 다가온다.
찰박찰박찰박. 어린 아이다.
빗물을 그대로 받고 있는 자신의 어깨 위에 우산을 걸쳐주고 비 맞으며 저만치 뛰어가는 어린 아이 하나.
그 자그마한 아이가 보여준 온정은 얼마나 뜨겁던가. 비마저도 뚫을 수 없는 따스함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채웠을 것이다.
오후에는 비가 개었다. 맑게 갠 하늘 아래 담벼락에 곱게 세워져 있던 비닐 우산.
가져가셔도 괜찮은데, 할아버지는 우산을 둔 채 깡통만 들고 사라지셨다.
그렇지만 고마웠던 마음 한자락은 우산과 함께 놓아두셨으리라.
집으로 돌아가는 영이의 발걸음이 한량 없이 가볍기만 하다. 저 밝은 햇살 아래 비닐 우산을 펼치고서 돌아가는 영이.
투명한 우산 속 노란 옷 입은 아이의 천진함이, 계산 없고 조건 없는 선행이 너무 고와서 책을 보는 내내 눈이 부시다.
수줍어서, 좋은 일을 할 때도 두리번 거리며 다른 사람 눈치를 보던 저 아이는 그래도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시 그림책인데, 윤동재 시인의 시에 김재홍 작가가 그림을 입힌 것이다.
시가 산문에 가까워서 그림과 짝을 맞추어서 버릴 것도 취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 온기를 담은 마음이라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