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너무 길었고, 딱딱하게 느껴져서, 제목의 의미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더랬다. 그러다가 묵혀둔 책을 꺼내든 것은 여행 때문이었다.

상하이 여행을 가기 전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 행복한 고민을 했다.
앞서 상하이 여행을 여름에 다녀온 나의 지인은 가서 돌아다니기도 바쁜데 책을 왜 가져가냐고 짐만 된다고 했지만, 비행기 안에서 읽거나 자기 전에 읽거나 책 읽을 짬이 있을 것 같았다. 비록 비행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안 가져갔음 큰일날 뻔 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책 없이 어찌 버텼을까...ㅠ.ㅠ 

상하이 가면서부터 비행기에서 읽고 또 3일을 잡아 먹은 책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었다. 책이 길었고, 작가주와 번역자 주까지 합해서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어서 오래 걸린 것이다. 그래서 머리도 좀 식히고 좀 더 빨리 읽힐 책으로 공지영의 책을 골랐다. 예상대로 술술 넘어가며 책장 넘기는 보람을 선사해 주더라. 

이 책은 그녀의 첫째 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글 모음이다. 얼마만의 간격으로 보낸 건지 몰랐는데 책의 말미를 보니 일주일에 한통씩 쓴 것이었다. 그 딸이 고3이 되었을 때,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보낸 편지들. 아무리 작가 엄마라고는 하지만 그 세련된 소통이 어찌나 부럽던지! 

이 책이 더 매력적인 것은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충고이자 연서이기도 하지만 책 속에 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작가 공지영이 만났던 책, 필요했던 책, 그리고 되새겨본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한 꼭지 이상씩 등장한다. 그 책들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무시 못한다. 책 제목을 일일이 적을까 하다가 검색하면 분명 누군가 리스트로 만들어뒀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미리 리스트를 작성해주신 분들께 감사!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힘들게 공부하느라 지친 딸에게 보내는 격려, 사랑과 이별에 흔들리고 떨고 있는 딸에게 보내는 위로, 그리고 딸과 싸운 날 보내는 화해의 악수까지. 이 책의 편지글들은 다양한 상황 속의 그네들 이야기, 결국엔 우리네 사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독자들을 안으로 안으로 끌어들인다. 책은 너무 무겁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진지함을 보여주는 매력을 갖고 있는데, 마무리는 언제나 수영 얘기로 웃음을 준다.  내일은 수영을 가야지. 오늘은 수영을 가야지.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수영을 못 갔고, 오늘은 시골에 다녀오느라 수영장이 문을 닫았고, 오늘을 설레어서, 오늘은 마음이 아파서 기타 등등. 작가 공지영은 수영을 못 가는, 혹은 가야 할 이유들을 대면서 꼭 마무리를 하지만 당최 수영장에 갔다는 얘기는 없다. 이거 설정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좀 유치하고, 어찌 보면 좀 귀여운 책 속 인사.  

'즐거운 나의 집'은 위녕의 시각에서 쓰여진 소설인데, 이 책은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 글로 모여진 책이다. 작가 엄마를 둔 모든 딸들이 그렇게 책 속 주인공으로서, 게다가 실명으로 등장하며 활개를 치며 살지는 않을 텐데, 참 특별한 경험이리라 생각된다. 그건 엄마처럼 작가의 꿈을 꾸는 딸로서는 선택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할 특별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는 딸이 엄마에게 보내는 답신이 한 통 실려 있다. 고백하건대, 프로 작가 엄마의 기나긴 글보다, 딸의 짧은 답신이 나는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글에는 아직 짜여진 틀도 정형화된 표현도 없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삶을 살아낸 공지영의 딸 위녕이, 이후 어떤 글쟁이가 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보질 못해서, 네가 '어떤' 삶을 살아도 너를 응원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용기를 갖지 못하겠다. 모든 엄마들이 자녀가 어떤 길을 간다고 해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신다고도, 말은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 마음들에는 모두 자녀들을, 손주들을 한껏 지지하고 지켜봐주고 싶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인생에 있어서 나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며 지지해주는 한 사람을 얻는 것, 무한한 축복일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지를 대가 없이 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값으로 셀 수 없는 축복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성실한 삶들을 향해 건강한 지지를 보내고 싶다. 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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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04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읽었군요~ 축하해요.
작년에 우리 큰딸 생일선물로 산 책, 나에겐 우수리뷰를 안겨주었던 책이죠.^^
민주는 이번 방학에 봤을 뿐이고...

마노아 2009-02-04 02: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덕분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요~ 딸을 향한 그 연서를 어찌 잊겠어요.
전 여행 가서 읽었는데 책 안 들고 갔음 어쩔뻔 했는지...ㅠ.ㅠ
민주양의 반응은 어때요? 책속에서 어떤 책을 건졌을까요?

메르헨 2009-02-0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땡기는걸요.흠..고민되는걸요...흠...^^
마노아님, 올만에 인사하고 가요.
상하이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셨네요. 부럽습니다~~~

마노아 2009-02-04 14:10   좋아요 0 | URL
메르헨님, 바쁜 와중에 들러주셨군요. 반가워요!
상하이 여행은 별로 즐겁지 않았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