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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파울로 코엘료와의 오랜만의 만남이다.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오 자히르부터 어쩐지 손이 가질 않아 몇 권의 신작을 놓쳤다. 그리고 다시 만난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집이다.
그가 여러 해에 걸쳐 겪었던 여러 일들과 그에 대한 단상들, 그가 기고했던 어떤 글들, 또는 그가 누군가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들, 그의 뜨겁고도 담백한 신앙고백들이 익명의 무수한 독자들을 향해 지혜의 말씀으로 저장되어 전달되고 있다.
자세하게는 안 나오지만, 책을 주르륵 읽다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들과 무척 바빠진 지금의 그의 동선들이 대강 눈으로 그려진다. 방황했던 젊은 나날들, 순례자의 길에서 얻은 깨달음, 유명한 작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게 된 바쁜 스케줄, 그리고 그가 만났던 많은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뜻밖에도 그는 '활과 화살'을 가까이 두면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그가 감동깊게 읽었다던 '활쏘기의 선'은 나 역시도 읽었지만 禪의 세계에 무지했던 나로서는 무척 힘든 독서였던 것을 기억한다. 빨리빨리 책을 읽어나가고 싶었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눈으로 읽고 막 건너뛰었던 부끄러웠던 독서를 읽었던 책으로 꼽기는 심히 민망한 일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익히 들어온 메시지이고, 또 어떤 에피소드들은 다른 책에서도 소개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그런 짜깁기 책이란 소리는 아니다. 익숙하지만 두 번 세 번 더 들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 있다. 만약 내가 개인적으로 에세이집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별점이 좀 더 후했을 수도 있을 텐데 코엘료의 팬으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이건 김훈의 에세이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나만의 법칙?이다.)
표지가 아름답다. 강물 위에 배가 떠 있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헌데 이 달이 상현달 마냥 절반만 보인다.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이 하얗게 눈부시다. 조금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묘한 이질감을 주는 표지이다. 워낙에 유명한 '제목'인지라 참신함은 떨어지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표지, 그리고 제목은 대체로 유사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그의 신앙고백이라든가, 신앙적 지침, 그리고 충고들이 유익했다. 우리에게 희생과 고난의 상징으로 다가오곤 하는 예수님의 존재를 즐겁고 기쁜, 재미난, 역동적인 이미지로 바꿔주고, 그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 부분은 몹시 고마운 내용이었다. 나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에 꼭 필요한 충고였으니까 말이다.
외국의 도시에 가면 박물관을 갈 게 아니라 사람 속에 뛰어들어 그네들의 모습을 보란 조언도 인상적이다. 하고자 하는 말과 의도는 충분히 수긍하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박물관을 먼저 가볼 듯 하다. 하핫,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때로 짧게, 때로는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전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메시지들. 우리의 삶을 보다 자연스럽게, 얽매이지 않게, 보다 용기있게 채워줄 조언들이다. 느린 템포로 조금씩 읽어나간다면 더 깊게, 더 따스하게 우리 마음으로 스며들 것이다. 한 번쯤 읽어본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 느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