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1 - 도시의 수도승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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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발동걸리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는 식객. 거의 전 권을 다 갖추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 읽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최근 형부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이어서 고우영 삼국지, 십팔사략 등을 읽고 나면 식객을 추천할까 보다.  

첫번째 에피소드 '설렁탕' 편은 장인 정신을 보여주었다. (사실 거의 모든 음식에서 장인 정신을 보고 있긴 하다.) 

설렁탕을 만드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 국물을 우려내야 하는지 몰랐다. 이러니 집에선 좀처럼 만들어 먹을 수가 없는 거구나.  

사골 국물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사골이 소 다리란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앞다리가 버티는 힘 때문에 뒷 다리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더 맛나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 

6개월 만에 창업을 하려던 그 남자가 자신의 오판을 깨닫고 다시 설렁탕 집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미숙함을 씻어내려 했다. 예상을 비켜가는 것도 독자로서는 즐거운 묘미다.   

두번째 에피소드 '장마' 편은 성찬이가 등장하지 않은 채 어느 위암 환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병원의 오진으로 일 년 간 위궤양 약만 먹으면서 병을 키웠으니 안타까움이 크다. 암 중에서 위암은 가장 발견도 쉽고 치료 확률도 높은 병인 것을. 간병인들이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식사하는 장면이 고문이라는 건 크게 공감한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인도적인 방법으로 휴식 공간이 따로 필요하다. 그런 걸 제공해줄 마인드를 가진 병원이 과연 있을까 싶긴 하다만.  

세번째 에피소드 '도시의 수도승'은 무척 반가운 이름이 등장했다. 보디 빌딩 세계 챔피언 출신의 김준호씨가 모델이다. 왜 반갑냐하면, 나의 싸아랑 이승환의 근육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라디오에서 얘기했었는데, 친구의 체대 학장인데, 그가 이혼으로 힘들어 할 때 운동을 권했고, 그때 개인지도 선생이 바로 김준호씨였던 것.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노래로 옮긴 것이 9집의 'No pain, No gain'이다.   



'운동'에만 국한시켜서 듣지 않아도 삶의 지혜가 되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가사를 옮겨 보면 이렇다. 김진표의 랩이 아주 맛깔스럽다.  

NO PAIN NO GAIN

그 고통이 너를 면역케 하여 강하게 저항케 하는걸
그 숱한 역경이 환희의 찰나 한껏 만끽하게 하는걸
너의 두 눈 촛점은 조금씩 흩어져 결국 한계가 보이고 인낸 튿어져
무릎을 꿇고 눈물 떨구고 일어나 칠흙같은 어둠속을 뚫고 uh!
PAIN 함 삼켜 버려봐 함 질끈 참아봐 한계의 끝에서 모든 신경이 너를 자극해도
OH! PAIN 절대 져선 안 돼 무릎 꿇지 마라 네 삶의 끝까지 곧 승린 너의 차지
네 피와 땀으로 널 이기는 거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없어
아무리 정도를 계속 따라가도 끝없이 나를 덮치는 성난 파도, 헤쳐 봐도 hut!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가 아니라고 uh!
PAIN 함 이를 악물고 함 질끈 참아봐 한계의 끝에서 모든 신경이 자극해도
OH! PAIN 절대 져선 안돼 무릎 꿇지 마라 네 삶의 끝까지 곧 승린 바로 너의 차지
절대로 포기하면 안돼 만만하지 않은 자신이란 상대
포기하는 것에 절대 반대 어케 결심하고 실행했었던 난데
정신 찾고 목푤 잡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바로 낙오
열정 갖고 아픔 참고 지금까지 너무도 나약했던 너를 바꿔
PAIN 함 삼켜 버려봐 함 질끈 참아봐 한계의 끝에서 모든 신경이 너를 자극해도
OH! PAIN 절대 져선 안돼 무릎 꿇지 마라 네 삶의 끝까지 곧 승린 너의 차지
PAIN 함 이를 악물고 함 질끈 참아봐 한계의 끝에서 모든 신경이 자극해도
OH! PAIN 절대 져선 안돼 무릎 꿇지 마라 네 삶의 끝까지 곧 승린 바로 너의 차지
 

이 온갖 먹을 거리가 넘쳐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식욕을 금욕으로 무장시켜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니, 도시의 수도승이란 소 제목이 제대로 적격이다. 다만 아이도 있는 가정에서 아빠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먹지 못한다는 건 좀 슬픈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 같은 근육은 부담스럽지만, 허영만 작가는 남자의 몸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감탄하셨다. 그 인고의 시간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미적으로도 찬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직접 보질 못했으니 알 길이 없다.  

네번째 에피소드 '가족'은 개인적으로 좀 불편했다.  

워낙 우리나라 정서가 '가족'으로 완전무장, 최후의 디딤돌이자 안정망이라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족애를 강조하면 숨이 막혀버린다. 고생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챔피언을 따내는 권투 선수의 투혼. 그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하나된 외침.  

이 작품 속에서야 미덕으로 작용했지만, 때로 '가족'이란 이름이 굴레가 되고 심지어 폭력으로 변하기까지 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므로 가족만만세 식의 주제는 불편하고 서글프다. 요새 주말 연속극으로 이태란 주연의 드라마가 있는데(제목은 모르겠다.), 그녀가 애가 둘이 있는데 이혼남과 사귀자 온 가족이 달려들어 결혼을 반대한다. 동생 지현우는 누나에게 "당장 헤어져!"라고 명령식으로 말하고, 아버지도 상대 남자를 찾아가 당신 '따위'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가족으로서 고생길이 뻔한 자리에 시집 못 보내겠다고 반대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명령하듯이 말하고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대하는 건 참 몰상식하다. 게다가 상대에게 '따위'라니. 옆 방에서 엄마 시청할 때 들려오는 대사만 듣고도 나는 달려가서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렇게 하면 나도 일종의 폭력을 휘두르는 거니까 스피커의 볼륨을 키운다는 거. ;;;;;  

마지막 에피소드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들었다.  

어느 작가의 그림을 너무도 사랑하게 된 할머니가 그림 값에는 못 미치지만 전 재산을 털어서 그림을 갖게 되는 이야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 아름답다. 어찌 보면 이번 11권에서는 성찬이의 역할이 그리 크지 못했고, 음식의 화려한 성찬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떤 사람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네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음식들은 결코 튀지도 않았고 감춰지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어우러졌다. 작가의 놀라운 솜씨 덕분이다.  

맨 뒤 당부의 말을 보니 식객 취재원을 가장한 사기 전화가 있다는 것을 보니 식객의 인기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 되겠다. 함민복 시인의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1월의 독서 목록에 '눈물은 왜 짠가'도 추가해야겠다. 더불어 독서도 권장하게 되니 이 책, 좋은 점이 또 생겨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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