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절판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13쪽

창세기 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화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38쪽

시간은 인간과 놀아주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다. 시간으로부터 제외된 인간이 그 시간에 관하여 말할 때, 인간의 말은 인간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시간을 따라간다. -66쪽

"법을 만든 날이다. 새 옷을 입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으로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그때 어려서 잘 몰랐지만, 그 설화적인 가난의 멍에를 지고 자유당의 무법천지를 살아가던 어머니에게 법을 만든 날은 자식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싶을 만큼 서러운 날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헌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물겹다. -96쪽

우리 가족은 피난 열차 지붕 꼭대기에 매달려서 부산까지 갔습니다. 열차의 지붕에 피난민들이 개미 떼처럼 들러붙어서 부산까지 내려간 것이죠. 많은 아이들이 부산까지 가는 도중에 죽었습니다. 졸다가 떨어져 죽고 바람에 날려가서 죽고 터널을 지나갈 때 천장에 늘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에 머리가 부닥쳐서 죽은 아이들이 무수히 많았답니다. 아는 안 죽고 살았어요. 나는 안 죽고 살아서 오늘날 이 나라의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이 열차가 부산까지 왔는데, 그럼 열차 안에 객실은 어떤 모습이었느냐. 객실 안에는 이 나라의 고관대작들이 셰퍼드와 피아노를 싣고, 식모, 부리는 놈 다 싣고, 심지어 요강까지 거기다 싣고 내려온 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의 목격담입니다. 내가 세 살 때, 내 조국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나는 그런 조국을 증오하며 살았어요. 용서할 수 없는 조국이지요. 그러면 지금 내 조국은 대체 어떠한 나라인가를 나는 또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로부터, 그 피난 열차의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화한 나라를 만들어 살아왔는가를 나는 돌이켜보고 있습니다.-124쪽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가. 왜 그런가.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이라고, 신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은 뒤죽박죽이 됩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내가 신념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로되, 인간의 진실이 과연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 많은 진실은 의심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서 말하는 능력을 이미 상실한 것이죠. 상실한 지가 오래됐어요. 한참 됐어요. 사회의 언어 자체가 소통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할 터인데, 소통되지 않은 언어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습니까.-135쪽

언어가 완강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고 무기입니다. 그런 언어는 소통되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는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죠. 소통을 단념한, 단절만의 정의이지요. 단절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136쪽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거죠. 인간의 언어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입니다. 말하기는 쓰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죠. 그리고 듣기는 읽기입니다. 이것은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는 말하기와 듣기 두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148쪽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이고 훌륭한 말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학교가 가르치는 거짓말이에요. 학교는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니에요. 학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직업에는 정말 귀천이 없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대학을 왜 다녀. 그러나 학교는 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는 그것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153쪽

나는 우륵이 조국을 배반하는 대목이 아주 맘에 들었어요. 악기를 들고 조국을 배반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륵의 악기에는 그 당시 가야금이라는 이름이 없고 그냥 금이었는데, 그 악기에 자기 조국의 이름을 붙여서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천년만년 전한 것이죠. 우륵은 사실 진흥왕을 이긴 사람일 수도 있어요. 대가야의 악기로 신라의 음악을 완전히 평정해버렸으니까. 가야금은 신라 최고의 악기, 최고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가야금으로, 자기각 배반해버린 조국의 이름을 거기다 붙여 천년만년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승부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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