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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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엄마 생각을 했어, 엄만 그 재래식 부엌에서 평생 대식구의 밥을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했어. 우리가 또 오죽이나 식탐이 많아? 생각나? 밥상을 늘 두개씩 차려야 했잖아. 밥 짓는 솥도 얼마나 컸어? 그 시골 반찬으로 우리들 도시락까지 다 싸야 했으니...... 엄만 그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해냈을까? 게다가 큰집이라서 늘 군 식구들이 두엇은 붙어 있었잖아.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가 않아. 너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연해졌다.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67쪽

-끝이 보여야 말이지. 그래두 농사일은 봄에 씨앗을 뿌리믄 가을에 거두잖여. 시금치씨를 뿌린 곳에선 시금치가 나고 옥수수씨를 뿌린 디선 옥수수가 나고...... 한디 그놈의 부엌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야. 아침밥 먹음 곧 점심때고 또 금세 저녁 때고 날 밝으면 또 아침이고...... 반찬이라도 뭐 다른 것을 만들 여유가 있음 덜했겄는디 밭에 심은 것이 똑같으니 맨 그 나물에 그 반찬. 그걸 끝도 없이 해대고 있으니 화딱증이 날 때가 있었지. 부엌이 감옥 같을 때는 장독대에 나가 못생긴 독 뚜껑을 하나 골라서 담벼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단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니 고모는 모른다. 알면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겄냐, 멀쩡한 독 뚜껑을 집어던지곤 했으니.

-74쪽

저녁밥 지을라고 양석 꺼내려고 광에 갔는디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을 때면 아이구 내 새끼들 낼 아침밥은 어쩐디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이니 부엌일이 싫고 자시고도 없었고나. 큰솥 가득 밥을 짓고 그 옆의 작은 솥 가득 국 끓일 수 있음 그거 하느라 힘들단 생각보다는 이거 내 새끼들 입속으로 다 들어가겠구나 싶어 든든했지야. 니들은 지금 상상도 안 될 것이다마는 그르케 양석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던 시절이 우리 시절이네. 다들 그러고 살았다. 먹고사는 일이 젤 중했어.

-75쪽

그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가 있어 무명옷이 아니면 입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옷감이 피부에 닿으면 몸이 간지럽고 부스럼이 났다고. 그는 어머니가 지어준 무명옷만을 입고 자랐다. 그의 기억에 그의 어머니는 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속옷부터 양말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어 입히려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옷장을 열어보니 거기엔 그가 평생토록 입을 수 있는 무명옷들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76쪽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93쪽

그는 엄마가 콩이라든지 감자라든지 들깨가 아닌, 배추나 무나 고추같이 씨앗을 뿌리든 모종을 하든 수확해서 먹을 것이 아닌, 보기 위해서 꽃을 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엄마의 그 모습이 낯설어 그가 담과 너무 가까이에 심는 거 아니냐고 하자 엄마는 담 바깥에 사람들도 지나다님서 봐야니께, 했다.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봄마다 장미는 만발했다. 장미를 심을 때의 엄마의 소망대로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장미가 필 적이면 담장 아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큼큼 장미향기를 맡았다. 비가 온 뒤면 담장 아래 떨어진 붉은 장미꽃잎이 수두룩했다.

-131쪽

아내가 딸이 쓴 책을 읽어달라고 했으면 그때의 당신이 읽어주기는 했을까?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에 당신은 아내를 거의 잊고 지냈다. 잊고 지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거나 탓하거나 방치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한 말씨를 쓰다가도 아내에게만 오면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가끔은 이 지방 사람들만이 쓰는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당신은 공손한 말투는 아내에게 써서는 안 된다고 어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랬다.

-147쪽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149쪽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171쪽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 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

-지헌아?

-예.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

-198쪽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함께 가!
그 말이 좋았고나. 대학생인 네가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안 가본 나에게 학교에 가자면서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했을 때의 네 말투의 높낮이도 기억하고 있고나. -220쪽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다가갔으면서 당신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으면 몰인정하게 굴었네. 생각해보면 참 나쁜 일이었네. 미안하구 미안허요.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랬고, 얼마 후엔 그래선 안될 것 같아 그랬고, 나중엔 내가 늙어 있었소이. 당신은 내게 죄였고 행복이었네. 난 당신 앞에선 기품있어 보이고 싶었네. -234쪽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236쪽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오빠는 용케도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던 말을 생각해냈다. 엄마는 조금만 기쁜 일이 생겨도 감사허구나! 감사헌 일이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누리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두 감사함으로 대신 표현했다. 오빠는 엄마의 감사함들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고. 감사함을 아는 분의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리 없다고. -272쪽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275쪽

어미됨을 부정당하고도 아들의 주검에 무릎을 내준 여인. 그들은 살아 있는 듯 생생했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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