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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소년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8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작가 분이 100년 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쓰여진 때도 꽤 오래 전 일일 것이고, 이 작품의 배경도 몇 십년은 지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 진하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학교에 간 첫날 아이 하나가 없어진다.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던 그 아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땅꼬마'로 불리었다.
이 낯선 아이는 선생님을 아주 무서워했고,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들도 무서워하는 바람에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공부할 대도, 놀 때도 따돌림 받는 아이.
아이의 어둡고 외로운 마음이 그림 속에서 절절히 묻어난다.
생략과 여백을 많이 둔 간결한 그림이고, 색도 제법 많이 사용했는데, 책 전반에 걸쳐서 소년의 외로운 마음이 자꾸 묻어난다.
혼자 사팔뜨기 흉내를 내거나 뚫어지게 천장만 쳐다보기, 책상의 나뭇결을 골똘히 살펴보기,
동무 옷의 꿰맨 곳을 살피는 것 등등이 땅꼬마로 불리는 녀석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아이는 수업을 듣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지만 무수한 관찰을 통해서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사람과 멀어져 있는 듯 보였지만 세상 가까이, 한 중심에 서 있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쳤지만, 아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타박타박 걸어 학교에 왔고, 늘 그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나.
바로 6학년 졸업반이 된 아이들에게 오신 이소베 선생님.
얼굴에 늘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학교 뒷산에 올라가셨다.
자연을 제대로 보여줄 줄 아는 멋진 선생님!
그리고 이때 땅꼬마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된다.
꽃과 채소와 식물 등등 모르는 게 없었던 땅꼬마!
선생님도 녀석의 놀라운 면면에 반해 버리셨다.
땅꼬마가 그린 그림, 땅꼬마만 알아볼 수 있는 삐뚤빼둘한 붓글씨도, 모두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면, 땅꼬마랑 자주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이들하고는 아무 얘기도 않는 땅꼬마였지만, 필시 아소베 선생님과는 깊은 대화가 오고 갔을 듯하다.
아소베 선생님이 말을 하면, 적어도 고개는 끄덕이며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두 사람만의 교감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글이 날라가서 다시 쓰고 있다. 포토리뷰라서인지 임시저장도 안 되어 있다. 달랑 네 개만 살아 있구나ㅠ.ㅠ)
6학년이기에 마지막 학예회가 되었던 그 해 무대에 땅꼬마가 올라가자 학생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녀석이 보여준 건 까마귀 울음 소리였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소리,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소리, 즐겁고 행복할 때 우는 소리 등등.
그 소리들은 청중들을 땅꼬마가 매일 학교로 걸어오는 그 머나먼 길로 인도했다.
녀석이 그 소리를 익히게 만들어준 그 길고도 외로운 길을.
지난 6년 간 녀석이 겼었을 외롭고 서러웠던 시간을.
학생들은 모두 울고 말았다.
자신들의 철없던 행동이 한 소년을 얼마나 아프게 만들었는지.
녀석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반성하면서.
졸업식 날, 개근상을 받은 것은 땅꼬마 혼자 뿐이었다.
누구도 몰랐는데,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림자 같던 그 아이는 사실 한결같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변함 없이.
이제 땅꼬마는 '까마동이'로 불린다. 녀석도 그 이름이 싫지 않은 눈치다.
별명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 깃들어 있다. 악의 없는 이름에는 상대의 특징이 녹아 있기도 하다.
까마귀 소년에게 아소베 선생님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녀석의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은 얼마나 외로운 것 뿐이었을까. 친구들에 대한 기억도 없이 말이다.
학교라는 시공간 속에서 무수히 있을 법한 이런 따돌림 문제에 전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소박하게 접근하는 아소베 선생님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자신의 소신과 재량을 제대로 발휘해서 아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선생님을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늘 꿈꿔본다.
비록, 소신을 지키고 바른 교육을 위해 애쓴 대가가 '파면'으로 돌아오는 험한 환경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