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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수의 오리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6
한정아 지음, 박의식 그림 / 마루벌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전쟁과 평화에 관련된 책을 보게 되면 사 모으고 싶어진다. 특히 그게 어린이 책이면 더더욱 탐이 난다.
쉽고 단순하게, 그러나 정확하고 진실되게 전달하는 책의 깊이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전에 한 번 중고샵에서 주문을 했는데 알라딘 측에서 책 수급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주문 취소를 요청했던 책이다.
다시 중고샵에서 보게 되었고 냉큼 주문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아웅다웅 다투고 있든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아리수는 한 강의 옛 이름이다. 아리수가 한강이 아니라 다른 뜻이란 얘기도 언뜻 들었지만 보편적인 시각대로 한강이라 생각하고 읽자.
신라와 백제가 아리수 강가의 곡물 창고 금물벌 들판에서 대치중이다. 역사적으로도 한강유역을 두고서 신라와 백제는 박 터지게 싸우곤 했었다. 그리고 그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순서로.
그림이 신선하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까닭도 있겠지만 머나먼 옛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빛 바랜 색을 사용했을 듯하다.
매우 역동적이고 무감각한 색채 청회색을 사용해서 군사들의 용맹함과 치열함을 표현했다. 금물벌을 되찾자고 외치며 힘껏 달리는 장수들. 그런데 갑자기 급 제동을 걸고 만다. 신라군이 먼저 멈췄고, 다시 백제군도 멈춰 섰다. 이들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알을 품은 오리!
오리 한 마리 때문에 전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 발생! 정말 신선한 설정이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이뤄지길 바라는 소망같은 휴전.
한 병사가 나와서 오리 흉내를 내며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하지만 모성애를 자랑하며 우리의 오리 여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꼬마 자동차 붕붕'은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아 쌩쌩 달리곤 했다. 에피소드 중에 개구리 때문에 달리지 못하고 급제동을 걸었던 내용이 나왔는데, 비슷한 얘기는 애니메이션 '카'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급작스런 휴전 때문에 백제 군과 신라 군은 서로의 고향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지극히 한국적이랄까.
알고 보니 서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지역에 살고 있었으며, 옛날엔 백제 땅 지금은 신라 땅인 까닭에 사실은 한 마을 출생한 사람들이라던가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내 엄마 오리가 품은 알에서 귀여운 오리 새끼들이 태어나고 백제군과 신라군은 화해를 다짐하며 사이좋게 곡식을 나눠갖자고 두 손을 맞잡는다.
'함께'라는 단어가 늘 아프게 울린다. 상생, 공생, 공존... 이런 단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마땅히 품어 안고 가야 할 단어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양 나라의 전쟁을 멈춰준 고마운 오리. 새끼들 중 백조 한 마리 훗날 자라날지도.(응?)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나지 않게 애쓰는 게 더 중요함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전쟁을 얘기하면서 평하는 눈꼽만치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 영화, 그 드라마, 그 책 아주 몹쓸 놈들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색감이 너무 어두운 게 흠이지만, 그 바람에 좀 더 진지한 느낌과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함께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듯하다.
마루벌 책을 오늘 몇 권 읽었는데 주제와 독서 적정 연령까지 모두 친절하게 표기해 주어서 신선하고 고마웠다. 이런 '배려'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