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루 11 - 완결
소다 마사히토 지음, 장혜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분 서재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잊었지만, 중고샵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강렬히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1권 완결이니 비교적 짧은 편이고, 그림은 많이 거칠지만 '발레'가 소재라고 하니 더 흥미가 갔다.
어릴 적 읽었던 김숙희의 '발푸르기스의 새벽'은 시도에 비해 내용이 많이 부족했고, 그보다 더 전에 보았던 '환상의 프리 마돈나' 같은 책은 더 감동적이었다고 기억하지만 내용은 오래되어서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이 책을 보면서 여러 번 놀랐는데, 아주 오래전 소년지 아이큐 점프에 연재되던 출동119의 바로 그 작가였다. 당시 나는 손년만화는 거의 패스하고 있던 중이라 읽지도 않았었는데, 그 작가가 발래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니 잘 연결이 안 되었다.

스바루에게는 쌍동이 남동생이 있다. 애석하게도 머리에 종양이 생겨서 병실에서 하루하루 기억의 소멸을 지켜보아야 했는데, 그 기억의 끈을 잡기 위해 스바루는 공통의 추억이 있는 소재를 '춤'으로, 온 몸으로 표현하고 묘사하고 분출해 냈었다. 그때가 아홉살이었다. 같은 반 친구 마나는 어머니 발레 교실에 친구들을 초정했는데, 천부적 소질이 있는 스바루를 본능적으로 멀리하려고 했지만 운명이 어디 그렇던가. 우연과 필연의 협력으로 스바루는 발레의 세계에 입문하고, 춤이라는 매력적인 세계와 만난 그 순간 가장 지독한 방법으로 동생과 이별한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엄마와 불화하게 되고 스바루는 천성적으로 무언가 결여가 된, 감정의 삐걱거림을 겪게 된다.

그러나 또 전설적인 발레리나였던, 지금은 캬바레 스트립쇼를 운영하는 아줌마를 만나서 6년 동안 자신도 모르는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원래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은 운명적인 스승을 꼭 만나게 되어 있다. 그건 우연의 남발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재능이, 분출하는 에너지가 그런 만남을 주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또 그 모습을 보고 분개하는 살리에르 같은 친구도 꼭 등장한다. 이 작품에선 마나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스바루를 음해하거나 방해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분하고 또 억울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필요한 동기자 조언을 해주는, 본인도 모르게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되고 만다. 그게 또 스바루의 힘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말이다.

그 스바루가 로잔느 국제 콩쿨을 석권하고 이어 미국으로 가서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과정이 정말 '숨막히게' 진행된다.
이 거친 그림체가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독자로 하여금 스바루의 빨릴 것 같은 에너지를 '눈'으로 보게끔 해주는 그 '스피드'에 있다. 뭐랄까.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절정'만 있다. 그래서 독자는 너무 깊이 매료되어서 한꺼번에 몰입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또 지치고 만다. 작품 속 스바루가 사람이 80평생에 써갈 에너지를 겨우 20년 사이에 다 써버릴 거라는 예측처럼 말이다.

작품이 11권 완결이라고 나왔는데 택도 없는 소리다. 미국편 완결이었고, 스바루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아직 고리키와의 듀엣도 이뤄지지 않았고, 일본 친구(그 예쁜 녀석 이름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구나.)도 다시 나오지 않았고, 어머니와의 결정적 화해와 상처의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작가가 다른 작품에 매진하느라 잠시 연재 중단을 했다고 하는데 너무하다. 유키 카오리가 천사금렵구를 끝내고 신의 아이들로 한참만에 돌아온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그나저나 참으로 내용이 강렬해서 밤새 머리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예술의 경지란 그런 것일 거다.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단계가 있겠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이 길이 아니면 안 되는 극한의 경지와 자아도취 또 그것을 넘는 다음 단계...... 스바루는 줄곧 어렸지만, 야수의 본능과 같은 감각으로 단계단계를 빠르게 뛰어넘는다. 그저 즐거움에 취해, 편한 마음으로 춤을 출때의 그녀도, 또 쫓기는 심정과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도약하는 그 다음의 그녀도 독자는 모두 그녀의 편에서 이해하게 된다.

프리실라 로버츠는 37세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그것도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스바루에게 간접적,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또 지금은 인정하지 않지만 언젠가 스바루를 '후계자'로서 거두고 키우고 밀어주지 않을까. 그녀가 20년 걸려 완성한 'zone'의 단계를 스바루는 열 여섯에 해냈다. 아님 처음 시작은 동생이 죽지 않도록 생명의 끈을 붙잡던 아홉살에 이미 시작되었다. 99.9% 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그 환상의 영역에 혼자 들어간 프리실라와 달리 스바루는 관객을 모두 데리고 그 자리에 돌입한다. 이미 스케일의 차이가 나와 있다.

너무 대단한, 괴물같은 녀석의 등장인지라 평범한 독자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실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하다. 춤의 세계도 그 극한의 세계도 알지 못하니. 그렇지만 숨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등장 인물들이 느끼는 그 감탄과 경악, 격정의 순간은 시각으로 충분히 전해진다. 전혀 모르던 춤의 세계로 풍덩 빠지고 싶을 만큼.

이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실사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그려내고 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우수성은 이럴 때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중력을 이겨버린 듯한 그 춤사위를, 또 중력을 정복한 것 같은 그 몸짓을 살아있는 사람(배우)을 통해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전설같은 춤꿈의 이야기는 만화를 통해 독자를 만난다. 2차원 공간의 감동을 3차원으로 입체적 승화시키는 건 결국 독자의 몫이다. 그 '상상력'을 즐기는 재미 또한 독자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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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10-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스바루. 예전에 한 5권인가까지 열심히 봤던 기억이. 그 후로는 미국 와서 못 봤지요...
대신 타고 다니는 차가 Subaru 라는 회사에서 만든 차랍니다 ^^;

마노아 2008-10-28 11:10   좋아요 0 | URL
작품이 나온지 꽤 오래된 것 같았어요. 년도를 보니까요. 스바루라는 자동차 회사도 있군요!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친구인가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토토랑 2008-10-2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그쵸? 스바루 2부가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근데.. 11편에 나온 그 남자친구는 별로 맘에 안들어요 ㅜ.ㅜ)

마노아 2008-10-28 15:35   좋아요 0 | URL
아핫, 1부 완결이란 소리군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쵸. 11편에 그 남자는 일단 비쥬얼에서 너무 아니었어요. 뭐랄까 성격도 좀 찌질해 보였고...;;;;;

딸기 2008-10-2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의 프리마돈나... 대체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냐. ㅋㅋ
요새는 미국판 일본판 막 그렇게 나오나보지?

마노아 2008-10-28 17:03   좋아요 0 | URL
향수를 자극하는 제목이지요^^;;;
스바루에서 주인공이 미국에서 불법 체류하다가 추방 당했거든요. 그래서 미국편 쫑이라고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