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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여우 씨 ㅣ 동화는 내 친구 48
로알드 달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논장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로알드 달이 글을 섰고 '내가 가장 슬플 때'의 퀸틴 블레이크가 그림을 그렸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짝꿍이 되어서 글과 그림을 담당한 작품이 꽤 많았다. 외서로만 한바닥 넘게 차지할 정도로.
앞서 내가 접했던 퀸틴 블레이크의 그림은 내용 때문에 무척 처연해 보였고 아픈 느낌이 가득했는데, 이 책에서는 로알드 달 특유의 경쾌함과 유쾌함을 잘 표현해 주었다.
골짜기 아래 세 농장에는 탐욕스러운 세 명의 주인이 있는데 보기스는 수 천 마리의 닭을 갖고 있는 뚱뚱보였고, 번스는 수 천 마리의 거위와 오리를 가진 배불뚝이 난쟁이였다. 또 빈스는 꼬챙이처럼 말랐는데 칠면조와 사과를 키우지만 식사는 늘 사과주로 대신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의 농장을 자주 기습하는 여우씨! 세 농장 주인은 여우씨 때문에 약이 잔뜩 올라 여우 잡기 계획에 돌입한다.
영리했던 여우씨는 번번이 위험을 피해갔지만, 세 농장 주인이 작정하고 덤비자 총에 꼬리를 맞는 부상까지 당하고 만다. 게다가 굴을 파고 들어오는 농장 주인들 때문에 며칠 째 굶주리며 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어야 했다.
처음엔 삼각형 모양의 골짜기가 역삼각형 모양으로 깊이 파헤쳐 지니, 여우씨 가족뿐 아니라 숲의 다른 동물들도 모두 생존의 위험을 느끼게 된다. 꾀돌이 우리의 여우씨는 이 총체적인 위기를 헤쳐나갈 묘안을 짜내는데...
표지의 색감은 무척 칙칙하고, 또 위기 일발의 상황들이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만 여우씨 가족과 다른 동물들의 만남에서 이어지는 대화들은 제법 가볍고 경쾌하다. 작가의 내공도 있겠지만, 햇살과나무꾼 역자팀의 내공도 훌륭했다.(이분들 번역 책 중에서 읽혀지는 느낌이 가장 좋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을 때 보면은 '윤리의식'이라는 게 목구멍에 한 번쯤 걸리게 마련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오소리씨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다. 어찌 됐든 '훔치는' 일은 나쁜 일이라는 절대 명제 말이다. 그러면 또 우리는 로빈훗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착취가 심했으면 되훔치는 도적이 미화될까. (일지매도 있구나!) 그런 문제 때문에 작가가 설정한 농장 주인 세 사람은 하나같이 욕심쟁이에 악취까지 심한 못된 인물들로 표현되고 있다. 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챙겨주는 맘씨 좋은 농장 주인이었다면 농장에 피해를 주는 여우씨나 오로리씨가 오히려 악당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의 질문이 조금은 걱정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지혜롭게 답해주어야 할 엄마 아빠의 책임이 무겁달까.
더불어 아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꽤나 다양하고 기발한 답변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제목이 참 맘에 든다. 멋진 여우도 아니고 멋진 여우씨라니! 말을 하는 고양이 네꼬씨가 생각나지 않는가!
작품 속 여우씨는 아이디어의 기발함이나 대담한 모험 정신보다 지나치거나 넘치게 하지 않는 자족함이 가장 지혜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래오래 잘 살 것이다. ^^
작가는 자신의 잃어버린 아이에게 바치는 의미로 이 책을 썼는데, 그 책이 하염없이 슬프거나 무겁지 않아 오히려 좀 더 짠한 느낌이다. 이렇게 유쾌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를 바랐겠지요. 본인도, 그리고 따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