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여름 작은 동산 4
팻 브리슨 지음, 안드레야 샤인 그림, 이인숙 옮김 / 동산사 / 2005년 2월
절판


열 두 살 여름에 있었던 일.
삼층짜리 연립주택 꼭대기에는 벨라비스타라는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셨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공터의 쓰레기를 치우고 그곳을 텃밭으로 가꾸어 내신 할아버지.
언제나 말 없이 라디오를 켜놓고 오페라를 듣던 그 할아버지는 이웃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태리식 억양 때문에 동네 꼬마들은 스파게티맨이라고 불렀더랬다.

할아버지의 텃밭 근처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놀던 주인공 꼬마.
야구공을 줍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토마토.
토마토를 야구공인 것처럼 해서 던지면, 그 토마토를 친 친구의 얼굴은 어찌 될까 장난끼 발동!
이 책의 미덕은 그림에 있는데, 외국 작가가 그린 티가 확 난다.(당연한 거지만!)
그 나라의 문화, 생김새, 피부 빛깔, 표정 등등이 모두 이국적이다.
그림 속 소년은 몹시 잘 생겼는데, 야릇한 표정에서 장난끼가 느껴진다.

아이들은 토마토로 야구를 해댔고, 그 결과 할아버지의 텃밭은 모두 망가졌다.
후추 열매도, 양파와 꽃도 모두 뿌리채 뽑혀 버렸는데, 때마침 이 자리에 도착한 할아버지!
망연자실 했을 할아버지의 단 한 마디,
"왜?"
야단을 치지도 않고 욕을 하지도 않고, 단지 그 한 마디, "왜?"

그 후 할아버지의 텃밭은 사라졌다.
다시 봄이 왔어도 할아버지는 밭을 가꾸지 않으셨다.
그것이 주인공 아이의 마음에 짐이 되었다.
채 하지 못했던 그 사과를 끝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할아버지를 만나 올해는 텃밭을 가꾸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못미더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올해도 또 한바탕 하고 싶은 게냐?"
하지만 그 말에 이미 아이의 마음을 읽었음이 느껴진다.
정중한 사과 한 마디에 할아버지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내일'을 약속했다.
무뚝뚝하지만 사실은 속깊고 정겨운 벨라비스타 할아버지.

그들이 함께 가꾸어가는 텃밭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따.
아마도 수채화 계열의 재료를 썼을 것 같은데 물이 번지는 이 느낌과 울긋불긋 색채의 조화가 곱디 곱다.
아이의 붉게 상기된 얼굴, 할아버지의 만족스런 표정도 잔잔하기만 하다.

엄마를 모시고 할아버지의 저녁에 초대받기도 했다.
오븐이라든가 식탁보의 모습, 진열장 등등의 가구에서 고즈넉함과 이국적인 느낌이 함께 다가온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음이 보여진다.
할아버지께선 모처럼 크게 웃으셨다.
이웃을 만들지 않았던 할아버지도 이들 모자가 이웃이 된 게 좋으셨던가 보다.
어린 친구로 인해 할아버지도 충분히 젊어지셨을 것이다.

그렇게 해마다 텃밭을 가꾸며 친구가 되었던 그들인데, 주인공 아이가 열 여섯 살이 되면서는 만남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게 세월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때 그 열두살 소년이 손녀에게 얘기해준다.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내가 가장 감동깊게 읽은 책은 '이해의 선물'이고, 얼마 전 '미스 럼피우스'도 참 좋았는데, 인생을 더 오래 산 노인분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는 지혜의 '유산'에 내가 깊이 매료된 듯하다. 그렇게 시간과 추억과 지혜를 나누고 공유할 조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내겐 없었지만, 그런 만남을 늘 숙원하곤 한다. 내가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만날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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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2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인데요.
그러잖아도 추석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함께 하는 그림책을 찾고 있는데 내가 본 것 중에 생각나는 건 여덟권이라 더 찾아보자 했어요. 이 책 찜해요 찜.
우리 애들도 할아버지와 같이 살진 않아서 그다지 친밀감을 느끼지 못해서 안타까워요.ㅜㅜ

마노아 2008-10-21 11:16   좋아요 0 | URL
처음 접한 작가진인데 다른 책은 더 없나 찾아봐야겠어요. 우리 조카들은 외할머니랑은 친하니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해요. 가족만한 유산이 또 없는데 말이죠...

bookJourney 2008-10-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감동이에요~. 이 책은 보관함에 담아두어야겠어요. ^^*

마노아 2008-10-22 13:18   좋아요 0 | URL
페이퍼북이긴 한데 그래도 책장은 두꺼운 편이에요. 알고 보니 울 언니도 중고샵에서 구했던데 그래도 책은 깨긋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