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럼피우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0
바버러 쿠니 글, 그림 |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분의 서재에서 보았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간에 언젠가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게다가 제목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휘파람 소리 같은 발음의 느낌도 근사했다. 그 책이 지금 내 손에 있다. (물론 중고샵 작품!)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 사는 루핀 부인. 그녀는 아주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었지만 꼬마 적 시절에는 앨리스라고 불렸었다.

앨리스의 할아버지는 커다란 배를 타고 미국에 이민 온 (아마도) 초기 세대의 인물. 할아버지는 1층에 가게를 내고 뱃머리 장식품도 만들고 인디언 인형도 깎는 예술가였다. 꼬마 앨리스도 할아버지를 도와 그림에 색칠을 하기도 했던 예쁜 추억들이 있다. 할아버지가 더 근사했던 것은 저녁이면 꼬마 앨리스를 무릎에 올려놓고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꼬마 앨리스는 자신도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에 가 볼 거고,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와서 살 거라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꼬마 앨리스의 멋진 생각에 동의해 주며 꼭 덧붙여 주기를,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앨리스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그 방법까지는 몰랐다. 그랬던 앨리스는, '금방금방' 어른이 되었다.

아, 여기서 '금방금방'이라는 말이 얼마나 와 닿던지.

나이 먹는 속도의 체감 정도는 해마다 더 가파르게 증가를 한다. 내가 꼬마였을 적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이미 '어른'으로 보였는데, 사실 그때도 우린 거죽과 달리 어른이 되지 못하곤 했다. 내가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는 이십 대 후반만 되어도 진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겉모습 뿐이었다. 서른을 넘긴 지금도, 아마도 내 안에는 채 자라지 못한 어리숙함이 그대로 있다. 좀 더 나이를 먹어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꼬마 앨리스는 좀 달랐다.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진짜로' 움직였다. 그녀는 정말 어른이 된 것이다!



앨리스는 집을 떠나 바다랑 소금 냄새하고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 가서 사서가 되었다.

책에 앉은 먼지를 떨고, 책이 서로 뒤섞이지 않게 정리하고,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던 것이다. 거기엔 머나먼 세상 이야기가 나오는 책도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앨리스를 '미스 럼피우스'라고 불렀다. 이 책의 제목이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미스 럼피우스는 가끔 공원에 있는 식물원에도 놀러갔지만, 그곳에서 느낀 열대의 섬은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 열대의 섬은 그녀가 움직여서 만날 수 있는 저 바다 건너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로' 움직였다!





열대의 섬뿐이 아니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들도 올랐고, 정글을 뚫고 지나가기도 했으며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다. 사자와 캥거루도 만나고, 잊을 수 없는 친구들도 가득 사귀었다. 미스 럼피우스는 어릴 적 다짐 그대로 머나먼 세계를 맘껏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험가 탐험가가 된 것이다. 몽상가일 수도 있었던 그녀는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세계를 누비며 다닐 수 있으려면 일단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겠지만, 거기까지는 따지지 말자. 그녀에게 유산이 많았던지, 혹은 남편의 재산이 많았는지, 혹은 그녀가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를 가고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계속 미스 럼피우스라고 불리는 걸 보니 결혼을 안했던지, 혹은 사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은 바뀐 걸 보니.)

이제 그녀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바닷가 작은 집에서 고요하게 살아도 좋을 할머니가 된 것이다. 그녀가 결심한 그대로 말이다.





그녀의 작은 집에서 바라보는 바닷가의 풍경은 절경이었다. 미스 럼피우스는 새 집 주위에 흩어져 있는 바위 틈새에 조그만 정원을 꾸리기로 결심했다. 바위투성이 땅에 꽃씨를 뿌린 것이다. 미스 럼피우스는 너무 행복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는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어. 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미스 럼피우스 역시 아직도 알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벌써 아주 멋진걸."

그 말은 핑계처럼 들리지 않았다. 풍요로울 것 같은 그녀의 생활 때문일지 몰라도, 그녀는 충분히 따스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듬해 봄, 그녀가 몹시 아팠을 때, 지난 해에 심었던 꽃씨들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름답게 핀 루핀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힘들었던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또 다시 찾아온 새 봄. 미스 럼피우스는 좋아진 컨디션으로 산책을 하다가 언덕 위에 가득 핀 루핀 꽃들을 보았다. 자신이 심었던 꽃들이 바람 결에 날려가 꽃씨를 더 넓게 퍼트렸던 것이다.

그 놀라운 풍경에 미스 럼피우스는 근사한 생각을 결심하게 된다. 이른바 꽃씨 전도사가 된 것이다!

(요 장면은 표지의 그림이기도 하다!)

미스 럼피우스는 꽃씨 가게에 가서 꽃씨를 아주 많이 샀다. 그리고 여름 내내 언덕을 돌아다니며 또 들판을 거닐며 꽃씨를 뿔렸다.

고속 도로 곁에도, 시골길에도, 학교 근처에도, 교회 뒷마당에도....



꽃씨 뿌리기가 그녀에게는 훌륭한 운동이 되어주었고, 정신적인 위로가, 희망이, 즐거운 생활이 되어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미스 럼피우스를 정신 나간 늙은이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뿌린 씨앗은 이듬해 봄에 멋진 결과로 나타났다.

온 마을에 루핀 꽃이 가득했던 것이다! 들판도, 언덕도, 고속 도로랑 시골길, 학교, 교회 뒷마당, 그리고 도랑 속과 돌담 곁까지 온통 아름다운 꽃 천지였던 것이다.

이제 미스 럼피우스는 가장 어려운 세번째 일을 해낸 것이다!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여기서 나무를 심었던 그 할아버지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무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 결과가 보이니 그가 더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미스 럼피우스 역시 훌륭하고 또 대단하다.  리디아의 정원에서 어린 리디아가 마을 사람들의 칙칙했던 집들을 온통 낙원으로 만들 수 있게 씨앗이 되어준 것처럼, 미스 럼피우스도 바닷가 그 마을에서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가 피워낸 그 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했을 것이고 즐거운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결심을 실천에 옮기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 그녀의 그 의지가 더 빛나고 감탄스럽다.



이제 미스 럼피우스는 완전히 파파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루핀 부인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머나먼 세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꼭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머나먼 세계를 꿈꾸고 다시 이곳 바닷가에 돌아올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그녀가 해주어야 할 마지막 당부간 남아 있다.

네가 해야 할 일 하나 더, 바로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

꼬마들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어떻게 해야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살면서 분명히 알아갈 것이다. 그걸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알아가는 그 과정들이 그 아이들의 삶을 또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것인가.

날마다 그런 세상을 꿈꾼다. 모두가 정직하게, 외롭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사는 세상. 그 세상을 함께 꿈꾸며 만들기 위해 소망하는 따뜻한 사람들. 그건 몽상가나 꿈꾸는 거야!라고 냉소를 퍼붓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비아냥거리지 않는, 한 걸음을 움직이기 위해 무언가 애를 쓰고, 다만 바라기라도 해주는 그런 세상.  이런 날은 존 레논의 'imagine'을 들어야 할지도.

멋진 책을 만나 기분이 좋다. 푸르고 싱그러운 그림들이 뻑뻑한 눈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바버러 쿠니의 다른 작품도 좀 더 찾아봐야겠다.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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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이렇게 줄거리를 다 알려주면 어떡해요?ㅎㅎㅎ
치 책, 제 서재에서 본 거 같지 않으세요? ^^

마노아 2008-10-20 11:36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순오기님 서재에서 보고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거군요^^
줄거리를 너무 남발했네요. 다음엔 좀 자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