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이야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5
버지니아 리 버튼 지음,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구판절판


칼데콧 상을 받았다고 해서 일단 눈이 갔고, 중고샵에서 만날 때마다 번번이 눈앞에서 '판매완료'의 외면을 받았던 나. 드디어 중고샵에서 이 책 건지다!
알고 보니 '말괄량이 기차 치치'의 작가였다. 이미 만났었던 작가구나!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집. 집을 지을 때 아주 튼튼하게 지으면서 절대로 팔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던 바로 그 집!
해가 지나가는 길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우스꽝스럽고 개구쟁이 얼굴을 한 햇님! 심지어 하품을 하기도, 어머 마지막 그림은 잠든 모습이네!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달력을 통해서 묘사해 주었다.
해가 지면 별이 뜨고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작은 집.
저 멀리 도시의 밝은 빛은 작은 집과 별로 상관 없는 딴나라 이야기 같았다.
도시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던 작은 집!

봄이 왔다.
남쪽에서 돌아온 첫 울새, 사과꽃의 꽃망울, 개울에서 놀고 있는 꼬마까지...
모두가 정겨운 풍경이다.
작은 집은 그 모습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늘엔 뭉게 구름.
산마다 들마다 풀들이 나무가 모두 정겹게 자라난다.
흙이 있고,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는 풍경.

하얀 데이지꽃 피는 여름을 지나 이제 단풍 지는 가을날.
가을걷이를 하고 사과를 따는 사람들, 그리고 학교에 가는 꼬마들을 지켜보는 것도
작은집에게는 즐거운 하루 일과다.
왼쪽 편의 글씨의 배열조차도 리듬감 있다.
작은집의 뒤에 펼쳐진 S라인 길도 모두 작가의 의도 아래 펼쳐진 세상.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나무가 늙어갔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도시로 떠났고, 이제는 밤이 되면 도시의 불빛이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되어버린 세상.
그리고, 이제 길이 바뀌어졌다.
마차가 아니라 자동차가 지나게 되어버린 길.
흙바닥이 아니라 아스팔트가 깔려버린 길.
길이 변해가는 과정을 한 화폭에 동시에 담아냈다.
하얀 구름은 어느새 검은 구름 한 점으로 변해 있다.

도로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마을은 조각났고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와 연립 주택들, 그리고 가게들.
땅위를 온통 메우는 것은 자동차.
이제는 도시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 거리에서 혼자 덩그러니 옛 모습을 담고 있는 작은집이 위태롭게 보인다.

고가 전철에 이어 이젠 지하철까지 등장.
교통이 편리해지고 사람들의 시간을 단축하자, 사람들이 삶마저 빨라졌다.
그들은 너무 바빴고 여유가 없었으며 멈추지도 않고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작은집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이미 잊혀진 존재인 것이다.

밤이 되어도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너무나 환한 불빛에 달도 별도 만날 수 없다.
작은 집은 도시에서 사는 것이 싫어졌다.
그 옛날 평화롭고 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그립다.
데이지꽃 들판과 달빛 아래서 춤추던 사과나무 꿈을 꾸어본다.
외롭고 슬퍼진 작은집.
이제 칠도 벗겨지고 유리창도 깨지고 덧창도 떨어져 나갔다.
더없이 튼튼한 작은집이지만, 이제 외형은 완전히 망가진 듯 보인다.
도시가 들어서며, 화려한 문명으로 치장하며 사람들이 잃어버린 그 무언가처럼.

어느 날, 작은 집을 지은 사람의 손녀의 손녀가 작은집을 발견한다.
이 집이 할머니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손녀는, 작은집이 어울릴 만한 곳으로 옮겨갈 결심을 한다.
기중기로 작은집을 들어올려 도시를 빠져나간다.
이제 작은집도 숨쉴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인가!

들판 한가운데 조그만 언덕 위.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는 그 언덕 위에 작은집이 옮겨졌다.
이제 해와 함께 달도, 별도 다시 볼 수 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감상하며 사람과 더불어 아름답게 살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 거대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무섭게 변하던 시기에 태어난 작품이다. 1943년에 칼데콧 상을 받았으니 환갑도 더 넘은 나이다.
그러나 책이 주고 있는 교훈과 깨달음, 그리고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잊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조금 아프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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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0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1940년대에 어린이 그림책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게 경이로워요!!

마노아 2008-10-09 22:39   좋아요 0 | URL
그때에 이미 반 세기 이후를 내다봤나봐요. 놀라운 선견지명이에요!